출판과정에서 숱한 뒷말을 남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전 경호실장 알렉산데르 코르자코프 국가두마(하원)의원의 회고록 「보리스 옐친, 일출에서 일몰까지」는 이렇게 시작한다.『대선 결선투표를 앞둔 6월19일 17시20분, 경찰당국은 행정부 청사에서 나오던 옐친 후보의 선거운동원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이 들고 나온 종이박스에는 발권은행의 지폐 묶음끈이 그대로 남아있는 미화 100달러짜리 신폐 50다발, 50만달러가 들어 있었다. 6월 대선자금으로 사용될 이 돈은 은밀하게 모금돼 외국의 특별구좌에 예치됐었다』
옐친 후보의 선거운동원 예브스타피예프와 리소프스키의 연행사건은 막바지 대선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언론은 이를 코르자코프 경호실장과 미하일 바르수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올레그 소스코베츠 제1부총리 등 옐친 측근들의 「친위쿠데타」로 불렀다. 옐친 진영이 대선승리를 위해 알렉산데르 레베드 후보(전 국가안보위 서기)를 영입하자 입지가 좁아진 측근들이 「재뿌리기」에 나선 것이다.
측근과 범영입파간의 대결은 바로 이튿날 승패가 가려졌다. 코르자코프, 바르수코프, 소스코베츠 등 이른바 크렘린 3인방은 결선투표의 무산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전격 해임됐다. 50만달러의 출처나 배후를 캐고 폭로할 시간적 여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는 법. 당시 적발된 50만달러가 옐친 대통령 대선자금의 일부라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이 자금은 현재 러시아를 움직이는 7대재벌 그룹이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들은 그 대가로 수십억달러짜리 알짜배기 국영그룹을 수천만∼수억달러에 거저 줍다시피 인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옐친 후보가 대선승리의 길을 택한 것은 당연했다. 크렘린 3인방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대선게임에서 진 것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터져나온 우리의 비자금 공방을 보면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전부 아니면 전무」의 대선전략이 어쩌면 그렇게 꼭 같은지 신기하기만 하다.<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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