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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의 자존심(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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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의 자존심(장명수 칼럼)

입력
1997.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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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은 13일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에게 알선수재와 세금포탈죄를 적용,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수의를 입고 법정으로 가는 대통령 아들의 모습은 한국이 처해 있는 시대적 격동성을 실감하게 했고, 실패한 개혁의 상징으로 아들을 감옥에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비극을 생각하게 했다. 부모로서의 대통령부부에 대한 연민이 새삼 가슴을 때린 것은 이 인물 저 인물 가릴 것 없이 총체적인 실망을 겪었기 때문일까.전두환 노태우씨를 감옥에 보낸 김영삼 대통령은 전직대통령들을 단죄했다는 자신의 결단에 감동했을 뿐 그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 전직대통령이 통치하던 시대의 많은 부정적인 행태를 자신과 측근이 답습한 채로 인물을 청산했으니 역사도 바로 설 것이라고 그는 낙관했다.

전두환 노태우씨가 감옥에서 나와 정치재개를 선언한다면 놀라운 일일까. 그 두 인물은 확실히 재기불능으로 청산되었을까. 도덕적인 문제와 성과에 대한 의문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은 생각만 있다면 얼마든지 정치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접근하지 못할 만큼, 그들을 용납 못할 만큼 정치풍토가 개선된 바 없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이 벌이고 있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폭로전은 그런 점에서 민심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 김대중씨가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 돈을 측근들이 관리해 왔으리라는 것을 짐작 못한 사람은 없다. 30년 군사독재 아래 온갖 피해를 당했던 그의 돈 관리는 더욱 은밀했을 것이다. 신한국당 폭로에 의하면 그의 비자금은 거의 92년 대선 무렵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것인데, 기업들이 여당에 엄청난 정치자금을 주면서 야당에도 약간의 「보험금」을 주고 있다는 것 역시 국민의 상식이다.

폭로에 앞장선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부도덕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일념에서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면서 3김정치의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폭로전에 초연한 입장을 지키던 이회창총재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정치개혁을 주장해 왔으나 이번에야말로 정치마당을 바꿔야 한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분명히 혁명적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3김청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비자금이란 말만 들어도 국민이 넌더리를 내는 것은 사실이다. 한번 터졌다 하면 수십, 수백, 수천억원대로 올라가는 돈의 악취에 많은 사람들이 구역질을 하고 있다. 만일 3김청산으로 돈드는 정치를 끝장낼 수 있다면 절대다수의 국민이 3김청산에 앞장설 것이다. 3김시대가 끝나고 새 인물들이 정치의 주역으로 나서면 정치풍토가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폭로 이후의 여론조사들에서 3김청산 호소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비자금을 폭로하는 방법에서 구시대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이 정부기관들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가 사태가 불리해지면 터뜨려서 국면전환을 하거나 사람을 잡는 일을 국민은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이번 폭로에서도 그런 악취가 난다고 느끼고 있다. 비자금을 은닉했던 전직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마당에 김대중씨도 철저하게 조사하여 범법행위가 있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대선을 두달 앞 둔 지금이어야 하는가. 또 92년 대선자금 의혹의 중심에 있는 신한국당이 야당의 부스러기 의혹을 따로 떼내어 고발하는 것이 온당한가.

강삼재 사무총장의 표정과 말에도 문제가 있었다. TV뉴스에서 『김총재 일족이 은닉해온…』이란 강총장의 표현을 들으면서 『일족을 멸하는 조선시대로 돌아갔나. 아니면 혁명공약을 듣고 있나』라는 살벌함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파트너인 여야가 조선시대 당파싸움하듯이 서로를 적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정치발전을 기대하겠는가.

신한국당은 승산없는 폭로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비자금문제를 정치개혁 입법으로 풀지 않고 경쟁자 죽이기로 몰고가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억지다. 이회창 총재는 『집권당이 어떻게 호락호락 정권을 내주겠는가. 자존심도 없는가』라고 역설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신한국당이 진정한 자존심을 찾아야 할 때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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