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송사들이 본격적인 전파전쟁 시대를 맞고도 안이한 프로그램 제작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방송환경은 수신설비만 갖추면 안방에서 아시아권 300여개의 채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방영한 뒤 외국시장에 팔아야 하는데 오히려 프로그램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공보처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방송 3사의 외국 프로그램 수입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8월말까지 방송 3사가 수입한 외국프로그램은 총 3,767편에 2,848만달러 어치이다. KBS는 2,155편에 1,290만달러 어치를 들여와 이미 지난 한해 구매액의 80%를 넘어섰다. 또 646편(681만달러)을 수입한 MBC, 966편(875만달러)을 들여온 SBS 역시 지난해 수입총액을 초과했다.
다국적 다채널 위성방송들이 아시아의 하늘을 나는 지금 TV프로그램은 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국경 너머로 전파하는 문화상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 프로그램이 충당되지 못하면 그 자리를 외국 프로가 대신 차지하게 된다. 편수를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 우리의 가장 큰 수입지역은 미국 일본 영국 홍콩이었다.
지난해 KBS가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를 인도네시아에, MBC가 「아이싱」을 홍콩에, SBS가 「모래시계」를 싱가포르 등에 수출했지만 수출입 총량을 비교하면 방송 3사의 지난해 프로그램 수입량은 수출량의 6∼7배에 달해 무역역조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케이블TV를 합치면 프로그램 무역역조는 더욱 심하다.
영화와 달리 방송프로는 재활용률이 낮은 편이다. 영화는 비디오나 방송용 등으로 2차 활용률이 300% 가까이 되는데 비해 방송프로는 겨우 2∼3%에 머문다. 이 점이 프로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예로 우리 프로는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음향과 음성을 구분해서 녹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때문에 수입국 말로 더빙하는데 문제가 있어 수출상담이 깨지는 예가 많으므로 먼저 개선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 역시 급격한 방송매체의 확대로 방송 프로그램 부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 일본의 한 매체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방송사업자, 방송 프로그램제작자, 권리자단체 간의 협의와 정비를 시급히 촉진·지원할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 프로의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수출 가능성을 고려한 제작과 태권도무술 드라마 등 한국 고유의 장르를 지원·육성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전문 탤런트를 배양하고 수출전문회사와 인력을 확보해서 새로운 영상문화의 세기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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