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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유해 확증없다” 규제 외면/대책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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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유해 확증없다” 규제 외면/대책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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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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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휴대폰·송전선 등 유해기준 연내제정 방침/실현여부 불투명 정통부·통산부·환경부 등 따로따로 정책도 문제전자파 규제를 요구하는 여론은 높기만 한데 정부의 움직임은 둔하기만 하다. 인체 보호기준을 제정하는 국제적 추세와는 상관없이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확증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각종 정밀기기의 오작동을 유발하는 경우만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또 보건복지부 환경부 정보통신부 통상산업부 등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아 전자파의 유해여부를 점검했으나 『사람 몸에 해롭다는 확증은 없지만 가능하면 전자파 노출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머물렀다.

「국민 보건을 위한 종합적인 점검」이 이런 상식으로 매듭된 데 대해 『노출을 피하는 것이 좋다면 어느 정도의 노출이 유해한 지 근사치라도 밝히는 것이 책임있는 행정』이라는 비난이 무성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전자파, 광선 등 첨단공해를 규제하겠다며 직제개편안을 내놓았으나 다른 부처의 반대로 좌절했다. 올초에는 연말까지 전철 휴대전화 송전선 전기기기 등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인체유해기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현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외국의 경우 수십년간 동물·생체실험과 역학조사 등을 통해 어렵사리 기준안을 마련했는데 전자파 방출현황에 대한 기본 조사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기준이 나올 리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자파 발생기기에 대한 규제는 정보통신부와 통상산업부가 맡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전파관리법」, 통상산업부는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전자파장해(EMI)여부를 검사한다. 하지만 전자파장해(EMI) 검사를 거쳐도 30G 이상의 자계를 형성하는 전자파를 내보내지 않아 다른 전기·전자제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증명할 뿐 인체 유해 여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체 유해 기준을 제정하려는 부처가 제각각이라는 점도 문제다. 정보통신부는 환경부와는 별도로 휴대전화의 인체 유해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한·일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자체 기준 마련에 나섰다.

환경부는 또 작업장의 전자파 기준은 노동부에 일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자장 허용치가 전자파에 노출되는 시간, 주파수 대역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연구와 검증을 거쳐 전자파의 인체 유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국대 전자공학과 김윤명 교수는 『전자파의 안전기준을 제정하려면 동식물 실험과 역학조사, 물리생리학 연구 등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정부에서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기만 한다면 기준을 만들지 않는 것보다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전자파 연구를 정부차원에서 통합해 종합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상연 기자>

◎외국의 사례/‘최대허용치 권고’ 등 인체보호 앞장/컴퓨터 모니터 전자총 전자파 차단코일 의무화/스웨덴이 가장 적극적 미국도 기존기준 10배 강화/새 안전기준 82년 발표

전자파의 인체 유해 여부를 두고 분명한 결론을 내린 나라는 아직 없다. 하지만 스웨덴이나 미국 등 선진국 대부분은 나름대로 인체보호 기준을 만들어 전자파의 「최대허용치」를 권고하는 등 앞서가고 있다. 만에 하나 전자파의 유해성이 입증될 때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스웨덴이 제정한 기준을 따라가는 추세다. 스웨덴은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나라다. 특히 컴퓨터 사용자의 전자파 피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노출규정 제정에 적극적이다. 모니터의 전자총 부분에 전자파 차단 코일 설치를 가장 먼저 의무화했다. 전자제품 규제기준도 상당히 엄격해 스웨덴의 기준을 전유럽이 적용한다면 우리나라 전기제품의 수출은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스웨덴은 또 93년 송전선과 전자장 표준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학교·양호시설 인근에서 송전선을 철거하도록 했다.

접촉 전류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이 45∼100㎃를 최대허용치로 정했지만 유럽기준(CELENEC)은 20∼35㎃로 훨씬 엄격하다. 접촉전류란 전자장과 접촉했을 때 인체를 타고 흐르는 전류이다. 유럽 각국은 또 휴대폰 등 휴대용 무선기기에 대해서도 별도의 기준과 실험규정을 만들어 정격출력이 20㎽ 이상이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근거리 측정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이 전자파 관련 안전기준을 처음 만든 것은 66년. 미국표준협회(ANSI)가 제정한 당시의 기준은 전자파의 열작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만을 고려한 느슨한 것이었다. 하지만 생체실험 결과 등을 종합, 82년 신경계에 미치는 자계의 영향까지를 감안해 기존 기준보다 10배나 엄격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미국 정부는 또 송신 기지국 안테나를 세울 때 반드시 30m이상의 고도를 유지하게 하고 주위에 철책을 둘러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 등 행정규제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전자파 규제에 관해서는 후발국에 속하는 일본은 미국과 국제방사선방호협회(IRPA)의 기준을 참고해 90년 안전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10㎑이하의 주파수에 대한 규제가 없어 일상 환경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충남대 전파공학과 백정기 교수는 『전자파의 인체 유해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 전자파 환경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며 『현재 국내에서 방출되고 있는 전자파의 실태를 주파수 대역별로 정확히 조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

◎전자파를 쫓는 사람들/국내 첫 유해주장 연대 김덕원 교수/10년 독학 전문가 김호군 육군중령/지난해 3월 본격 연구모임도 발족

국내 전자파 관련 연구는 외국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정부 지원이 미약하고 연구 여건이 미비한 탓에 아주 최근에야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하지만 학계와 일반시민 가운데 오래전부터 전자파의 유해 여부에 관심을 갖고 외롭게 연구를 진행해 온 사람들이 많다.

현역 육군 중령인 김호군씨(42)는 지난해 「전자파와 인체」라는 단행본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병기장교인 김씨는 10여년 동안 독학하다시피 전자파 연구에 매달려 전자파로 인한 인체피해와 첨단장비의 고장원인 및 증상을 규명했다고 자부한다. 김씨는 온돌식 보일러의 전자파를 차단하는 「유전차단지」를 특허출원하는 등 발명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연세대 의용공학과 김덕원 교수가 불모지나 다름없는 전자파 연구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김교수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중 하나로 흡연과 전자파를 즐겨 비유한다.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의학계에서 공인을 받는데 40여년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전자파의 유무해 논쟁이 팽팽해 보이지만 결국 유해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는 것. 그는 국산 컴퓨터 모니터의 전자파 방출량이 외국 제품의 4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비롯, 그동안 국산 전자제품의 전자파 방출이 심각하다는 점을 환기해 왔다. 지난해 펴낸 「전자파 공해」는 국내에서 처음 발행된 전자파 공해 관련 연구서라는 의의를 가진다.

학자들과 정부부처 및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전자파의 인체영향을 연구하는 모임도 있다. 지난해 3월 한국전자파학회 산하 연구모임으로 출범한 「전자장과 생체관계 연구회」는 전자공학 및 의학전문가와 정보통신부 공무원,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한국전력 등 업계 연구팀 등 다양한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꾸준히 인체유해 여부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회장인 단국대 김윤명 교수는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동물실험을 실시하는 등 의욕적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 출발은 늦었지만 외국 안전기준에 대한 집중 연구와 각종 실험을 동시에 진행해 우리 상황에 맞는 전자파 안전 기준을 제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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