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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폭로전은 가라/김호진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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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폭로전은 가라/김호진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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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버릇처럼 신문을 펼쳐들면 대선관련 기사가 거의 모든 지면을 덮고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대선기사를 톱뉴스 아니면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언론이 대선문제를 비중있게 취급하는 것은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실시된 어떤 여론조사에서 꼭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82%나 된다는 사실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국민이 선거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관심이 많을수록 투표율이 높아지고 당선자의 대표성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법적이거나 비신사적인 방법으로 관심을 유도하고 인기를 살리고자 획책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그런데도 신한국당이 국민회의측 대선후보 비자금 내역을 폭로함으로써 정치권의 기상이 태풍전야를 연상케 하고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확실한 증거없이 제보차원의 자료를 갖고 상대후보를 음해할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해서 비자금사건을 폭로했다면 신한국당은 마땅히 국민을 우롱하고 정치를 희화화한데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대로 폭로내용이 사실이라면 폭로의 표적이 되는 정치인은 마땅히 법적 정치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우리 선거사를 보면 싸움이 치열할수록 흑색선전과 폭로전술이 난무했고 순진한 국민은 진위도 모른채 덩달아 흥분하기가 다반사였다. 이건 한국정치의 수치요 비극이다. 이제는 폭로전으로 얼룩진 한국정치의 구태를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폭로전은 결코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된다. 사실을 사실대로 가려 어느 쪽이든 잘못을 범했을 경우에는 법과 국민의 이름으로 엄정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듣기만 해도 불쾌감을 자아내는 매수·음해공작·인신공격 등 정당하지 못한 수법은 문민정부하에서 치러지는 오늘의 선거풍토에서는 자제되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선거철만 되면 유행병처럼 재발하는 선심행사도 추방되어야 한다. 무절제한 가두유세로 소음공해를 일으키거나 득표만을 겨냥해서 실현성도 없고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공약을 무리하게 남발하는 행위는 일소되어야 한다.

정경유착이나 대선자금문제가 또 다시 차기정권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하는 일은 사전에 봉쇄되어야 한다. 한보사건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느닷없이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대선 분위기가 또다시 위축되고 유권자가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쫓기는 마음으로 투표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이번에도 여야가 옥외연설회를 갖기로 합의했다니 자못 걱정된다. 각 후보측은 청중동원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뿌릴 것이고 유권자는 흥청대는 선거 분위기에 빠져 주인정신을 잃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고비용 정치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유권자를 날품팔이로 전락시키는 군중대회식 연설회는 억제되어야 한다. 대규모 집회는 군중심리를 유발하고 이성을 마비시킬 뿐 아니라 선거 분위기를 과열과 혼탁으로 몰고 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잠복해있던 지역감정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될 것이다.

미디어 민주주의의 이점은 선거 비용이 적게 든다는 데 있다. 유권자는 굳이 유세장에 나갈 필요가 없고 후보측도 청중을 동원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돈을 뿌리지 않아도 된다. 다만 미디어 민주주의에 있어 관건이 되는 문제는 언론이 각 후보를 얼마나 엄정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검증하고 보도하느냐 하는 점이다. 언론이 형평성을 잃고 특정정파와 후보를 두둔하는 편파성을 띠거나 흥미 위주의 선정주의에 치우치면 미디어 민주주의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정치권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든 이제는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도덕성·지도력·치국의 경륜·정당의 정권담당능력 등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자세를 견지해 주었으면 한다. 산업화의 욕구가 강했던 근대화 시기에는 경제개발의 비전을 바탕으로 치국의 경륜을 부각시키는 후보가 어필했고 민주화의 열기가 확산될 때에는 반독재 투사가 반사적인 이득을 보기도 했다. 안보위기가 고조될 경우에는 안정과 혼란의 이분법적 사고가 유권자의 투표심리를 좌우했고 보수세력은 거의 본능적으로 여당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논리가 근대화의 논리를 대체했고 문민정부 출범을 계기로 민주화의 실험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요컨대 지금은 정치환경이 변했고 국민의 의식수준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정치공작이나 흑색선전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표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각 후보진영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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