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보다 치인쪽에 더 비중/정치와 행정 다양한 방법 제시/“퇴계·율곡은 실천관심 적었다”조선후기 실학사상의 원류는 16세기 후반 남명 조식(1501∼1572)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실학의 연원을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로 보는 기존 학설과 맥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조선정신사 연구에 새 지평을 열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병련(45) 교수는 계간 「정신문화연구」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 「남명 조식의 정치사상과 사상사적 위치」에서 『퇴·율학파와 실학 사이에는 「연속적 동질성」보다 「단절적 이질성」이 크다』며 『실학의 연원을 퇴계에 연결하는 입장도 다분히 「사유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파당적 기초 위에서 형성된 사승연원적 관점을 답습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유방식의 차이란 무슨 말입니까.
『유학은 수기치인, 즉 자신의 인격 완성(수기)을 통해 세상을 구제함(치인)을 목표로 합니다. 퇴계는 수기에 몰두하고 민생을 위한 사회적 실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약했습니다. 반면 남명은 수기를 치인을 위한 기초로 보고 정치에 있어서는 현실적 상황에 적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후대 실학과 사상적 틀을 같이 하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조식은 성리학 이론은 외면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 평생동안 책만 보았을 뿐이니 입으로 성리를 말하고자 하면 어찌 남보다 못할 리 있겠는가? 다만 말하고 싶지 않을 따름」이라며 실천에 직결되지 않는 공리공담을 배척했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조식은 정치와 행정을 개인적 수기와는 다른 독자적인 분야로 인정하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음양 지리 천문 의학 궁술 진법 진지구축법 등 현실문제 해결에 필요한 학문이라면 무엇이든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도교와 불교, 양명학도 배척하지 않는 개방성을 보였습니다. 후일 임진왜란때 정인홍 곽재우 김면 등 제자 50여명이 의병을 일으켜 놀라운 전과를 거둔 것은 이러한 학풍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자는 집집마다 모두 가지고 있는데 똑같은 자를 가지고 임금의 화려한 의복을 마름질하는 사람도 있고, 버선 한짝 못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론이 실제로 공효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그림 속의 떡이 배고픔을 면해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남명의 문집은 후일 반대파에 의해 여러차례 첨삭·변형됐는데 어떻게 그의 사상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까.
『그래서 실록에 남아 있는 상소문 원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편지 등에 실린 내용을 일일이 문집 내용과 대조했습니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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