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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대선의 청산(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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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대선의 청산(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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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자금 소동이다. 김영삼정부 5년은 비자금으로 지샌 세월이다. 비자금으로 날이 밝아 비자금으로 저물어 간다.비자금 파동의 기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제일성에서 비롯된다. 「재벌들로부터 돈을 한푼도 안 받겠다」는 다짐은 깨끗한 신한국 건설의 의지의 표현이었을 뿐 아니라 비자금과의 결별선언이었고 모든 비자금의 해체 명령이었다. 그것은 철학이 없는 현정권의 유일한 철학이기도 했다. 온 나라가 이 한마디로 소독되는 줄 알았다. 나라의 위생을 믿었다. 그랬던 것이 정권의 임기가 다해 가는 지금 그 결의는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떠들썩한 것이 정치권의 비자금 공방이다.

현정부의 비자금 사냥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으로 시작되었다. 전직의 부도덕성을 높이 매달아 현직의 도덕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전직대통령들의 비자금을 구속함으로써 자신의 운신을 구속하게 되었다. 부정하게 모은 비자금의 지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비자금이 유죄라면 그 혜택을 입은 당선도 유죄라는 원천유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이른바 92년 대선자금의 멍에다. 비자금을 단죄한 현정권의 업적은 스스로의 족쇄가 되었다.

어차피 이제 김대통령은 대선자금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집권후 간단없이 괴롭혀 온 대선자금의 악몽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선자금의 당당한 공개도 「역사 바로 세우기」다. 쓰여진 역사만 바로 세울 것이 아니라 쓰고 있는 역사도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파문도 여기서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자금 발설이 나오자 김총재측에서는 김대통령의 대선자금부터 밝히라고 역공하고 있다. 대선자금은 김대통령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김총재의 것도 있다. 김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김총재가 지난번 대선에서 선관위에 신고한 대로 법정 한도액내의 선거비용을 썼으리라고 믿는 국민은 드물다. 그리고 그 돈의 출처가 궁금하다. 신한국당측이 공개한 재벌기업자금 수수내역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당시의 관행으로 미루어 모두 깨끗한 돈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낙선자에게는 사전수뢰죄 적용이 곤란하다지만, 정치가에게는 법만큼 중요한 것이 도의다. 도의적으로는 당선유죄, 낙선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김총재의 대선자금중에는 자신이 실토한 대로 적어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원의 부정한 돈이 들어 있다. 야당도 맞장구를 쳐서 단죄한 그 비자금의 일부다. +α의 유무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 20억원이 『본의 아니게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 한마디로 다 면책이 되는 것인가. 고해했다지만 국민이 모두 신부인 것은 아니다. 국민은 그것을 용서해 준다고 말한 적이 없다.

신한국당측이 발설한 김총재의 비자금이 만일 사실이고 대선후에 조성한 것도 들어 있다면 그것은 위법여부 이전에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을 처벌한 정신에 대한 거역이다. 김총재가 대선 직후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서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지만 법을 넘어서 제1야당의 당수만한 공직이 어디 있겠는가.

92년 대선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 97년 대선까지 와 있다. 92년 대선으로 맺힌 것은 97년 대선에서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동안 비자금과 대선자금의 수렁에서 질척거려왔다. 정권은 이 때문에 줄곧 흔들렸고 국력은 줄줄 누수되었다. 이번 대선 전에 여당이나 야당이나 밝힐 것은 다 밝히고 규명할 것은 다 규명해야 한다. 각자가 치과의사 앞에서처럼 아아하고 입을 크게 벌릴 때다. 모든 대선자금과 비자금의 의혹을 당당히 해명해야 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선거는 국민의 용서를 구하고 국민이 용서할 것은 용서할 좋은 기회다. 이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만일 이대로 덮어버린다면 결국은 다음 정권의 숙제로 남게 되고 또 5년동안 내내 나라는 이 때문에 흔들리게 된다. 우리는 이제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번 선거로 매듭짓고 비자금의 늪에서 탈출해야 한다. 92년 대선을 청산하지 않고는 97년 대선을 치를 수 없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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