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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성 아낌없이 보여준다/세계연극제를 통해 본 일본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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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성 아낌없이 보여준다/세계연극제를 통해 본 일본 연극

입력
1997.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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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의 반복 등 곳곳 적나라한 표현/국내연극 분위기와 닮은꼴도 많아6일 막내린 「맹인안내견」까지 세계연극제에 세 작품을 선보인 일본은 국내 연극과 상당한 유사성으로 큰 화제가 됐다. 1930년대 신극의 수입이래 국내 연극계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음에도 정작 구체적으로 파악이 안됐던 일본 현대연극의 경향을 이번 기회에 살필 수 있었다.

일본연극은 놀라웠다. 첫째는 폭력과 성적 표현의 적나라함 때문이었고 둘째는 국내 일부 연극과 너무도 비슷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연극에서 폭력과 성이 배제될 수는 없다. 특히 이번 세계연극제에 참가한 세 작품은 인간의 잔학성(명의 야부하라), 개인을 짓누르는 집단폭력(맹인안내견), 현대사의 상처(도쿄 게토)에 초점을 맞춘 탓에 폭력성은 더욱 부각됐다. 살 속 깊이 찌른 칼을 돌려 후비고, 베어진 목에서 피묻은 우동이 흘러내리고, 죽음이 반복되는 정도에 이르러서는 폭력에 대한 집착을 보는 듯했다. 또 가부키 영향을 받은 농염한 성적 표현과 배우들의 노출도 종종 눈에 띄었다.

국내 일부 연극과 유사하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한 평론가는 『이번 공연들이 그러한 설을 어느 정도 확인시켜 준 계기』라고 말했다. 유사점은 극중 배우들이 자유롭게 「노는」 연기, 또 극의 효과음으로 음악을 쓰고 조명을 이용해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 내는 방식 등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누가 누구를 베꼈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전통을 현대화하는 연극적 작업이 비슷한 식의 결실을 맺고 있다는 추측과, 두 나라의 연극이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국의 연극이 어떤 공통의 뿌리를 갖고, 어디서부터 갈라지는지를 따져 보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김희원 기자>

◎기무라 고이치 「명의 야부하라」 연출/“연극은 역시 대사가 많아야”

60년 전통의 극단 문학좌를 떠나 지진카이(지인회)를 창설, 신극의 테두리 안에서 변화를 주창한다. 서구의 사조를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된 일본의 현대연극(신극)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 참가작 「명의 야부하라」에서 일본의 전통연희인 가부키·분라쿠의 형식을 수용, 질펀한 코믹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연극은 역시 대사가 많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언어중심의 연극관을 갖고 있음을 명확히 했으며 『유행이나 흥미거리를 따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연때만 배우들을 결성하는 시스템.

◎김수진 「맹인안내견」 연출/강렬한 야외공연이 장기

『평소 안쓰는 뇌의 일부를 자극하는 연극, 웃음 뒤에 무서움이 드는 연극을 하고 싶다』 신주쿠양산박의 김수진은 신극에 저항하는 언더그라운드연극의 적자. 기본적으로 일본사회와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오락성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 과장된 연기, 돌발적인 극 전개, 노래삽입, 깜짝쇼식 장면 등 언더그라운드연극의 특징은 그렇게 생겨나며 강렬한 야외공연이 장기다. 단원은 35명으로 5년이상 단원에겐 월급을 준다. 『영화로 진출해 스타가 된 단원은 돌아오지 않는』게 아쉬움이다.

◎시미즈 신진 「도쿄 게토」 연출/언어 배제한 퍼포먼스 선봬

『특별한 의미는 없다.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시미즈 신진의 가이타이샤(해체사)는 언어를 배제하고 소리와 신체, 시청각 매체에 의존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정통연극에서 벗어나 문명과 제도비판을 담는다는 점에서 신주쿠양산박과 일맥상통하지만 표현은 관념적이다. 추한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정신이나 무표정한 표정 등에서 일본의 현대무용인 부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실제 구성원 다수가 무용을 공부했다. 그러나 작품 「도쿄 게토」에서 연출의 정교함은 약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었다.<김희원 기자>

◎일본 연극 3편을 보고…/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강렬한 무대적 표현 좋았지만 새로운 표현양식은 안보여

연극제의 마지막에 일본연극 세편이 잇달아 상연되며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들은 일본 현대연극의 주류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데라야마 슈지, 니나가와 유키오, 노주로, 김수진으로 이어지는 언더그라운드 연극계열의 「맹인안내견」, 오타 쇼코, 후루하시 테이지, 시즈미 노부토미 등이 발전시킨 전위연극계의 「도쿄 게토」, 그리고 서양연극을 일본화·현대화한 기무라 고이치의 「명의 야부하라」로 우선 구분할 수 있다.

「명의 야부하라」는 250년 전 살육의 연속인 설화를 끌어와 극화함으로써 현대의 관객에게 신분상승, 물질추구, 계층간 차별의 해악을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해설자는 해설 촌평 음향효과 연출을 겸하며, 배우들은 일인 다역을 맡아 악사와 더불어 2시간40분간의 공연에 다양한 변화와 활기를 제공했다. 세트를 없앤 무대엔 꼭 필요한 소품만을 사용하여 배우 중심의 가난한 연극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잔혹한 장면을 작위적으로 희화한 것이나, 혼란스러워 보이는 무대구성이 문화의 차이를 더욱 실감하게 했다.

「도쿄 게토」의 소재는 전쟁과 분란, 억압의 현대사에서 가져왔으나 일체의 대사나 스토리텔링이 없다. 현대무용 「부토」의 영향으로 보이는 경직된 표정으로 상처받은 모습, 추함, 고통을 시종 드러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몸짓들이 리듬을 바꿔가면서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거나 흥분상태를 유도하기도 한다. 추상적 표현을 통해 구체적 반응과 수용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나 공연 전체의 변화와 구성력이 관객의 인지나 상상의 매개 구실을 충분히 하지 못함으로써 「애매한」 난해함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맹인 안내견」은 현대일본을 무대로 한 창작 실험연극을 엿볼 기회를 제공했다. 문학적 희곡을 채택해 현란한 시·청각적 효과가 가미된 연출로 이를 살리려 했다. 지하광장에서 맹인이 찾는 전설의 개, 순정과 절개 등 고전적 테마가 표현적인 조명, 복층무대, 안무, 노래, 다양한 음악의 사용으로 설득력을 얻으며 입체화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무대. 게다가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희곡을 중심에 두고 독자적인 표현을 찾으려는 시도가 고무적이었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극단적이리만치 강한 무대적 표현과, 코러스의 연기 안무가 강하게 부각된 점이다. 관객에 대한 철저한 배려, 표현의 톤은 거칠어도 세세한 부분까지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이국의 관객을 사로잡는 공연의 미학, 극에의 몰입을 유도하는 힘, 새로운 표현양식이 여는 신선한 세계 등을 경험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이웃 일본연극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공감할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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