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9일에도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비자금 은닉 주장을 놓고 강도높게 공방을 벌였다. 신한국당은 이날 강삼재 총장이 「20억+알파」의 증거라고 제시한 비자금 관련 계좌번호와 수표번호를 공개했다. 신한국당의 이같은 관련자료 추가공개는 확전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대목으로, 언제 또다시 메가톤급 추가폭로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민회의는 폭로전의 부도덕성과 함께 폭로문건의 진위 여부와 입수경위 등에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한편 자민련은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파장의 이모저모를 저울질하고 있고, 민주당 및 이인제 전 경기지사진영은 조속한 진상규명을 강조하면서도 이번 비자금 사태가 가져다 줄 어부지리를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이다.◎신한국 “봉합 없다” 몰아치기/확전 의지 검찰수사 압박/기업 돈 수수 흘리다 일단 공개안해
신한국당은 9일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비자금보유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보강자료」를 제시하고 검찰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신한국당은 이날 상오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제는 검찰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어 강삼재 사무총장은 지방에 내려갔다 상오 11시30분에 올라오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회의후 이사철 대변인은 『김총재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알파인 6억3천만원의 증빙자료와 변칙실명전환한 내역을 공개한다』며 계좌번호 등을 밝혔다.
이처럼 신한국당이 보강증거를 제시하고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일련의 흐름에는 「갈 데까지 가자」는 결전의 결의가 짙게 배어있다. 나아가 당직자들은 『친인척 비자금계좌, 돈준 기업 등에 대한 추가폭로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신한국당이 확전을 의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신한국당이 줄기차게 검찰수사를 촉구하는데는 심상치 않은 시사점이 있다. 이미 전직대통령 비자금 수사에서 볼 수 있듯이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는 관련자들의 사법처리 등 치명적인 타격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당사자가 김총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한국당은 김총재에 대해 상당한 타격,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사망」을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한국당은 당초 폭로의 제2탄으로 김총재에게 돈 준 기업들의 명단도 공개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당직자들로부터 11개 대기업의 명단이 거론되며 기업별 액수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신한국당은 그러나 기업명단 공개가 미칠 경제적 파장, 재계의 반발, YS대선자금으로의 연쇄적 확산 등을 고려, 일단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확실한 물증없이 폭로위주로만 나갈 경우 오히려 여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고려했음직하다.
이처럼 제2탄을 공개하지않은 것이 추가공세의 포기인지, 유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당직자들은 『상황을 보고있다』는 말로 추가폭로 가능성을 시사하며 「최후의 일전」에 대비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는 조심스런 반응도 나오고있어 주목된다.
만약 검찰수사가 진행되거나 신한국당이 추가적으로 자금출처인 돈 준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면, 비자금 사건의 퇴로는 없어진다. 검찰수사나 극단적인 폭로는 결국 현 정권의 비자금에까지 손을 대게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모든 경우를 감안하면서 확전을 도모한다면, 그 전선에는 적정한 수준에서의 봉합은 없다고 봐야한다. 신한국당 고위당직자들도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사활만이 남았다』고 말하고 있다.
신한국당의 이런 자세는 어떤 희생이 돌아오더라도 김총재의 대세론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증거입수의 법적하자, 정치판을 깨는 무리한 승부수라는 비난이 있지만 이런 비난은 정권을 넘겨주는 상황과 비교하면 사소하다는게 신한국당의 입장인 듯하다.<이영성 기자>이영성>
◎국민회의 폭로전 차별화 전략/상황 봐가며 사활건 전면전 돌입/“민심 우리편” 맞대응 자제
국민회의는 신한국당측의 계속되는 폭로전에도 불구하고 맞대응을 삼간채 사태의 조기진화에 무게를 둔 법적·정치적 대응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당내 일각에선 『더 이상 수수방관하다가는 반격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봉쇄될지 모른다』며 맞불작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김대중 총재를 비롯한 당지도부는 이전투구식 싸움이나 전면전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일단은 폭로전을 야기한 여당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고 폭로문건의 작성과정과 배후를 추궁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대응방안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같은 기류는 9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당무위원 연석회의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국민회의는 이날 회의에서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와 강삼재 사무총장의 고발 ▲여야정치지도자들의 자금을 조사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조사위 구성▲관련 상임위에서의 진상규명 ▲대정부질문을 통한 정치공작 규탄 등으로 대응방향을 정했다. 신한국당이 주장하는 「DJ비자금설」이 김총재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데 목적을 둔 정치공작임을 부각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공법을 통해 신한국당과 차별화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9일 『우리 당은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당분간 신한국당의 폭로전에 맞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가 이날 신한국당에 대해 폭로전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낸 것도 여론을 등에 업고 상황반전을 꾀하려는 포석이다. 정동영 대변인은 『5개 지방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총재의 어설픈 폭로전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여전히 김총재에 대한 지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추악한 폭로전에 대해 진저리를 치는 여론의 분노속에 신한국당은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신한국당의 폭로전에 대한 차별화전략을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앞으로의 상황전개에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가정이지만 신한국당이 극한상황을 조성할 경우 국민회의로서도 사활을 건 전면전에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검찰수사가 일방적으로 시작되는 등의 상황이 조성된다면 김영삼 대통령과 이총재를 직접 겨냥한 전면전에 돌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국민들은 위기상황에서 신한국당이 어떻게 하고 있고 국민회의가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의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통해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차이점이 분명히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이와함께 폭로전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세력들이 아예 선거판 자체를 뒤흔들려는 저의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장현규 기자>장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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