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동경)에 사는 1년동안 서울을 생각하면 나는 늘 마음이 무거웠다. 매연, 교통난, 불친절,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그속에서 시달리는 생활이 싫어지곤 했다. 한국의 신문들을 읽으면 온 지면에 가득차 있는 우울한 기사들로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도쿄 역시 세계의 대도시들 중에서 쾌적한 생활이 있는 곳은 아니다. 물가는 높고, 주택사정은 나쁘고, 러시아워의 전차와 버스는 숨쉬기 힘들 만큼 만원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인내와 양보와 친절로 악조건을 이기고 있다. 우리는 왜 그들처럼 하지 못할까. 악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우리 모두의 이기심과 신경질과 뻔뻔함을 생각하면서 나는 절망하곤 했다.
나는 그런 기분으로 서울에 돌아왔고, 서울의 모든 것은 여전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 공해 역시 신문에서 읽은 것 이상이었다. 그런데 며칠전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나의 기분은 일시에 바뀌었다.
우리는 한국의 부모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지난 여름 빛나리양을 유괴 살해한 범인의 아버지(56)에 대해서 얘기했다. 전문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결혼하여 임신까지 한 딸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을 때, 공직에 있던 그 아버지는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고, 딸에게 연락이 닿자 『차라리 자살하여 죄 값을 치르라』고 권했다. 자기 딸이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는 충격속에서 그 불행한 아버지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된다.
사건직후 김이영(한양대 의대) 교수는 한국일보에 실은 칼럼에서 『그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부모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우리시대의 「어른」노릇을 했다』고 썼는데, 우리는 전적으로 김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는 또 괌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신기하(58) 의원의 어머니에 대해서 얘기했다. 신의원 부부는 지구당 당원들과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TV뉴스에서 아들 며느리의 사망 소식을 듣고 혼절했던 어머니 박묘현(93)씨는 장남 대규(70)씨가 『같이 갔던 당원 21명도 변을 당했다』고 알려주자 울음을 그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아들도 잘 죽었네. 데리고 갔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혼자 살았다면 얼마나 무참했겠나. 같이 죽은 사람들에게 죄스러우니 이제 울지 말게. 자네나 나나 세상 떠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저 세상에 가서 모두 만나세』
그렇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어머니는 눈물을 거둔채 곡기를 끊었고, 아들이 세상을 떠난지 꼭 50일만인 9월24일 눈을 감았다고 한다. 나는 그 어머니의 장례에 갔던 국민회의 의원들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한국의 옛 어른들이 어떤 자세로 세상을 대했고, 자식을 키웠던가를 생각하면서 옷깃을 바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얘기는 내 친구 자신의 얘기였다. 혼기를 넘긴채 전문직에서 일하다가 세 자녀를 가진 남자와 결혼했던 그는 시부모까지 모시며 무난하게 살아왔는데, 얼마전 생일을 맞았을 때 『그동안 애썼으니 원하는 선물을 사주겠다』는 남편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선물이나 보석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어서 사양하고 있었는데, 문득 『선물대신 100만원만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로 그 전날 TV에서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갑자기 그 애들에게 무엇이든 먹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래서 남편이 준 100만원을 적십자에 보냈어. 좋은 일 했지?』
『너는 꼭 너같은 짓만 한다니까』라고 말하면서 나는 참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왔다는 감동을 느꼈다. 아름다운 곳,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 곳,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흔들려도 이름없는 이들의 선의와 규범과 높은 정신이 든든한 바탕을 이루는 곳, 현실은 불만스러워도 희망이 있는 곳으로 나는 돌아왔다.
마침 가을이 와 있고, 비온 뒤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우리는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다 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가을에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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