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창작음악계 위상 세계에 알린 좋은 계기/다양한 프로그램과 국제적 행사에 비해선 전위·실험성 담은 작품이 부족/국내 작곡가 무관심도 문제점으로 드러나국제현대음악협회(ISCM)의 세계음악제(World Music Days)는 올해로 창립 74주년을 맞는 현대음악 축제다. 1923년 잘츠부르크 축제의 일부분인 근대실내악축제 프로그램으로 시작, 현대음악의 흐름을 주도해온 비중있는 행사다. 이처럼 중요한 행사를 우리나라에서 치른 것은 일단 기쁜 일이다. 특히 창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한 국내 풍토에서 현대음악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잔치를 치러낸 것은, 준비와 진행과정의 악전고투를 충분히 짐작케 하는 장한 일이다.
97 세계음악제(9월26일∼10월3일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의 주제는 인성이었다. 연주된 80여편의 작품은 실내악곡이 주종을 이뤘고 전자음악, 합창곡 그리고 실내오페라 등으로 다양했다. 그러나 다양한 내용과 국제적인 행사에 비해 음악제 주제에 맞는 내용 전개가 빈약했다. 인성음악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담지 못하고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음악제 성격으로 보아 전위나 실험성 있는 작품을 더 많이 담아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국내 작품은 강석희의 실내오페라 「초월」, 김기범의 「하늘과 궁창의 노래」, 조성온의 「곤」, 그리고 홍수연의 「정원」 등을 제외하고는 표현양식이 낡고 내용이 빈약한 졸작이 대부분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왕성한 작업태도는 살 만 한데 구성력과 표현력, 그리고 내용이 빈약했다. 전체적으로 작품경향은 초현실주의 내지 신표현주의적인 음악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음악제의 분명한 방향설정이 안된 점이다.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매너리즘과 일종의 과거음악 향수까지 느끼게 했다. 음악제는 시대성 있는 음악사조와 양식 그리고 기법 등을 작품을 통해서 제시했어야 했다.
특별순서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 베르케트의 퍼포먼스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다. 특히 베르케트의 몸짓과 소리(구음)는 청중을 사로잡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홍신자의 퍼포먼스는 내용과 예술성이 미흡해 일부 국내 연주자들의 설익은 연주와 함께 이번 음악제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아쉬웠던 것은 국제적인 작곡가들의 잔치인데도 국내 작곡가들의 무관심 속에서 치렀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행사를 기피한 것이나 진배 없다. 거기에 비해 작곡학도들의 참여열기는 칭찬할 만 했다. 창작음악계가 발전하려면 이런 행사에 작곡가들의 협조와 적극적인 참여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연주장소가 매번 바뀌어 청중한테 불편을 주기는 했으나 작품의 규모나 특성 그리고 장르에 따라 장소를 달리한 것은 그런대로 살 만 했다. 아울러 연주회 팸플릿의 내용이 국제행사인 데 비해 구체적이지 못했고 너무 단편적이었음을 지적한다.
이번 세계음악제 유치는 우리나라 창작음악계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높이는 데 좋은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외국 작가들에게는 우리 음악문화를 재인식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계기로 국내 창작음악계가 자신을 돌아보며 국제경쟁력을 갖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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