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특별시사회를 가진 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제작한 윤기(일본명 전내기)씨는 「왜 이 영화의 국내개봉이 허용 안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뚜렷한 한국말로 말했다.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그의 의문은 당연하다.이 영화는 한일양국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3,000여명의 한국인 고아를 길러낸 윤씨의 일본인 어머니 다우치 치즈코(전내천학자) 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실화다. 윤씨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은 윤씨가, 감독과 촬영은 한국측이 각각 담당했고 한국과 일본의 배우가 출연했다.
영화는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다. 일본인 배우 몇명이 나오지만 일본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촬영도 대부분 다우치 여사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목포에서 했고 대사도 80%가 한국말인데도 국내 개봉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제작자의 국적이 일본이란 사실이 묘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는 「장군 마에다」란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됐던 일을 기억한다. 일본냄새가 물씬나는데도 제작자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기준으로 국내상영 허가를 받았었다. 이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은 「사랑의 묵시록」에 대한 정부의 상영불가 조치를 납득하는데 많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제 와서 국적판정 기준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 그 기준도 변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 당시는 이러한 판정기준이 시대의 흐름에 적합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주변환경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아야 한다.
몇년전부터 일본영화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융통성 없고 시대감정과도 맞지 않는 기준에 매달릴 필요가 있는지 한번 되돌아 볼 일이다. 제작자 윤씨의 국적여부를 떠나 이처럼 아름다운 한국사랑 이야기를 「일본영화」라는 기준 하나 때문에 한국사람이 감상 못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기회있을 때마다 들고 나오지만 국민들의 의향을 조사할 계획이나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의 생각이 이처럼 굳어 있는 동안 불량만화 등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본 문화가 뒤안길로 들어와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높아졌다. 일본 대중문화를 갑자기 받아들이면 한동안 충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계적으로 문을 열면 얼마든지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일본영화도 이젠 수많은 외국영화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부부터 입장을 정리해 나가야 한다. 2002년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란 사실을 눈앞에 두고 이런 기준을 고수하는 실리는 무엇이며 명분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시대에 맞는 객관적이면서 융통성 있는 기준을 만들어 이같은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묵시록」의 국내상영 허가문제는 좋은 시금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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