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나는 아직 그곳을 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만 들어도 괜스레 가슴이 아리던 때가 있었다.
분단과 산업화 이후 갈가리 찢어지고 사라져버린 우리 민족의 어떤 「원형」이 그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집단무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한반도 북쪽의 말씨와 숨소리를 연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촉하고 싶은, 그것을 설레며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이데올로기 이전의 세계는 늘 그렇게 순정파적인 면이 있다.
요 근래 몇년 사이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연변과 서울 사이에 그 완고하던 이데올로기가 느슨해지는 틈을 이용해 잽싸게 자본이 끼어든 것이다.
돈은, 그리움을 깔아뭉개고 나아가 그리움을 자본화한다. 서울 쪽에서는 조선족 마을과 백두산을 관광상품으로 바라보고, 연변 쪽에서는 남한의 공장과 번화한 거리를 떼돈을 벌 수 있는 시장으로 생각한다.
그리움은 고리타분한 노래가 되어 더 이상 노래방에서도 인기를 끌지 못한다. 우리들 삶과 사랑의 양식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만나고 헤어지는 일 하나만 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쉬운 길만을 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음이든 육체든 접촉 이전의 그리움을 접촉 이후에까지 오래오래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문득, 순정을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하겠노라는 흘러간 옛날 노래가 그립다.<시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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