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시월 초가 되면 장롱 속 깊은 곳에 있는 골동품을 끄집어내듯 잠깐 들어내 바람을 쐬게 하고는 다시 내년 이맘때까지 까맣게 잊고 지내는 것이 단군이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에 언제때 이야기를 곱씹고 있을 수 있느냐, 높게 열린 하늘 아래서 한껏 가을의 풍광을 즐기는 것이 시대에 걸맞는 개천절 맞이가 아니겠느냐는 냉소도 적지 않다. 그러면서도 그 골동품의 진가에 대해선 긴가민가 하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단군에 대한 인식인 듯하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의식 깊은 곳에 단군에 대한 인식이 다소간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의 세월이 남겨논 흔적이다. 시월 상달을 맞아 그것의 의미를 한 번쯤 되살펴 보는 것이 뜻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단군은 고조선 때 왕의 칭호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단군신화의 요체는 하늘신의 자손에 의해 고조선이 세워졌고 그 왕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왕의 정통성의 근저로 천손이라는 핏줄의 신성함을 내세운 것으로서, 당대에선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에 의할때 왕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인 존재로 내세워지게 된다. 이는 비단 고조선 뿐아니라 동북아시아 고대국가들의 건국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바로서 고대적인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역사의 창고에서 다시 끄집어 내어 윤색한 것이 해방전 일본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였다.
아무튼 그러한 고대적 정치 이데올로기는 중세에 들어 한국에선 철저히 청산되었다. 대신 정치의 주체인 왕과 사대부들이 피치자인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고 왕의 정통성의 근저도 거기에 있다는 민본정치 이념이 자리잡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단군신화는 여타 삼국의 건국신화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종말과 함께 그 실제적 기능과 의미를 상실한 것이 된다. 실제 고조선 멸망후 단군신화는 민간신앙 형태로 일부 지역에서 전해져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단군신화가 지니는 또 하나의 주요 요소는 그것이 한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국가의 건국신화라는 점이다. 이 점을 매개로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면서 단군은 고려 후기 이후 재해석되고 부활하게 되었다. 고려 전기까지도 당시인들의 귀속의식의 기저에는 동족의식이란 공분모와 함께 끈끈하게 삼국유민의식이 잔존하고 있었다. 무신란 이후 혼란기에는 그런 면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되어 백제부흥운동 신라부흥운동 같은 것이 터져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몽고와의 항쟁을 거치면서 삼국유민의식이 극복되었다. 이는 장기간의 항쟁 속에서 겪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고양된 민족의식에 의해서였고,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재인식은 그것의 구체화된 모습이었다. 즉 우리 역사의 첫출발을 고조선에서 찾고 삼한 칠십여국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그런 인식을 나타낸다. 자연 그 뒤에 등장하는 삼국은 모두 고조선에서 비롯한 것이 되니, 삼국유민의식이란 것이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왕조가 출현하였을 때 그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던 것도 이런 역사의식과 유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부터 삼국유민의식과 같은 것은 역사상에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돌연 20세기 중반기에 들어 영호남 대립의 기원은 멀리 삼한시대까지 올라간다느니, 신삼국시대니 하는 낮도깨비 같은 소리가 횡행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역사에 대한 반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군에 대한 인식에서 또 한차례 큰 변동이 생긴 것은 근대에 접어들면서였다. 우리는 흔히 7,000만 동포, 한 겨레 한 핏줄이란 말을 한다. 겨레나 동포란 말은 전근대 시기엔 어디까지나 자신의 형제나 친척에 한해서 쓰였던 말이다. 그것이 민족 전체를 가르키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 반상과 주노의 신분적 차별을 극복하면서 부터이다. 그러한 근대적인 민족의식이 단군에 대한 인식에도 반영되어 몇천만 단군의 자손이란 인식이 등장케 되었고, 그것은 한국인의 민족의식의 특징적인 면모인 강한 혈연의식의 한 토대가 되었다.
이런 인식이 국수적인 전체주의의 논리로 전개되지 않고 민주적인 민족공동체에 대한 지향성을 지닌 것일 때 단군은 우리의 소중한 유산으로 생활 속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우선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와 또다시 횡행할 조짐을 보이는 지방색 선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지는 단군이 지닌 의미이다.<국사학>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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