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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뒤바뀐 재벌특사(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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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뒤바뀐 재벌특사(사설)

입력
199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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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회장,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등 재벌총수 7명을 포함한 23명에 대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오는 3일 개천절을 기해 단행키로 한 것은 그 동안의 현정권 자세로 봐 이미 예상되어 온 바다. 더구나 특별사면이란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다.하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김영삼 대통령이 차기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잔형면제」가 아니라 형선고 자체를 아예 실효시키는 방식으로 서둘러 특별사면해 주려는 조처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여러 모로 이론의 여지가 있고 착잡한 심정마저 금하기 어렵다.

첫째 지적할 것은 이들 재벌들에 대한 단죄란 쿠데타와 정경유착으로 말미암은 5·6공의 총체적 비리구조에 대한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거창하게 단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로 전·노씨는 중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어 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비자금사건 1심선고때의 그 비장했던 분위기이다. 일반의 예상을 앞질러 재벌총수들에게 실형을 선고했고 그중 3명에게는 집행유예형이 아닌 2년∼2년6개월의 유기징역형선고도 마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어떻게 됐는가. 유기징역형은 집행 자체를 유보해 유명무실해졌고 항소심과 대법원 확정판결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집행유예로 끝났으며 이제는 선고 자체를 실효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벌총수들에 관한한 망신준 것 말고는 「역사적 단죄」란 없었던 일이 되고 만 셈이다. 누구라도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현정권의 개혁 및 역사적 단죄의지가 용두사미로 흐를 조짐은 지난해 8·15때 율곡비리 등 대형비리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특사로 이미 드러난 바 있었다.

두번째 의문은 형선고를 실효시킬 만큼 망국적 관행인 정경유착폐습이 과연 사라졌고 제도적으로도 근절대책이 마련되었느냐는 점이다.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1심재판때부터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포괄적 뇌물」제공에 대해 불가피한 정치자금제공 등으로 변명했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정서란 아직도 찾을 길이 없다. 오히려 5·6공 당시의 정경유착이 92년 대선자금 의혹으로 이어졌다는 의심조차 없지 않다.

또한 정경유착이나 선거타락을 원천봉쇄할 정치개혁입법이 여전히 표류중이고, 재벌들 스스로도 형식적 자정선언 이상의 가시적 조처마련에 소홀했다.

이번 특사명분은 경제활동의 걸림돌을 제거, 회생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히려 최근 우리를 포함한 29개 회원국에 대한 기업인의 부정부패대책을 강화키로 한 바 있었다. 그리고 특사 자체도 국민적 합의에 따르고 정서를 반영하는 대전제 아래에서만 단행되어야 한다는게 오늘의 민주적 법정신인 것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비록 특사실시 순서가 잘못되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정경유착을 근절하는 실증을 보여주길 당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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