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X에 불가능은 없다”/스필버그에 맞설 특수효과의 거장/‘터미네이터 2’로 할리우드가 깜짝/연말에 개봉할 신작 ‘타이태닉’선 또 어떤 신기법 보여줄지 주목90년대 할리우드의 새 가능성은 디지털이다. 마법상자 컴퓨터와 결합한 영화는 그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태생부터 당시의 첨단기술을 토대로 출발한 영화산업은 디지털시대를 맞아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됐다.
할리우드 메이저들이 황금시장으로 기대하는 장르는 과학영화(SF)와 액션, 멜로, 코미디 등이다. 이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비결은 「SFX(Special Effects, 특수효과)」. 상상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시도된 SFX는 영화산업의 이윤까지 무한대로 확장했다.
디지털시대의 새 주인공은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이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와 「주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는데! 하지만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70∼80년대 동화적 상상력을 그려내는데 한계를 느껴 영화제작 기법의 일부에 디지털개념을 도입했다면, 카메론은 발상부터 이들과 근본적으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아이디어마저 컴퓨터에서 시작됐고 컴퓨터가 합성해내는 4차원의 환상적인 이미지로 영화를 완성했다. 액체 금속인간과 실제 배우 사이의 화려한 모핑(Morphing)기법, 컴퓨터가 탄생시킨 최초의 필름스타로 영원히 기억될 「터미네이터2」에서부터 디지털시대의 할리우드 역사는 새롭게 시작된다.
캐나다 출신의 제임스 카메론은 70년대 B급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 밑에서 아트디렉터 겸 미니어처 세트제작 등을 담당했다. 81년 데뷔작 「Piranha2」를 거쳐 84년 선보인 「터미네이터」는 당시 스필버그의 제작비 수준에 비하면 싸구려 독립영화였다. 그러나 SF속에 필름느와르의 분위기를 접목시킨 이 영화는 걸작으로 꼽히며 그의 재능을 처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스필버그가 「인디아나 존스3」을 발표하던 89년카메론 역시 「에일리언2」(86년)에 이어 「어비스(Abyss)」를 발표한다. 바다 깊이 심연을 헤매던 부부가 물기둥을 만나 우정을 나눈다는 이 영화는 SFX의 새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한다.
드디어 「터미네이터2」(91). 영화사에 새 이정표를 남긴 SFX의 전시장이었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실제 배우들은 자유롭게 신체를 주고 받았고 이들은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었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2」를 통해 상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에 완벽하게 이식시켰다. 「스타워즈」의 부산물로 탄생한 루카스-스필버그의 ILM(Industrial Light & Magic)처럼, 95년 디지털도메인이라는 특수효과 회사를 차리고 스필버그에 도전장을 내민다.
ILM의 루카스-스필버그팀이 92년 「주라기 공원」으로 상상속의 존재를 복원, 관객의 눈을 잡고 있을 때 제임스 카메론은 상상의 세계에서 떠나기로 결심한다. 가상현실로 관객의 눈을 자극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가장 현실적인 SFX를 시도한다. 멜로드라마에서 출발, 액션과 전쟁이 결합된 「트루 라이즈」(94년)는 SFX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무한한 스펙터클은 「주라기공원」만한 성공은 가져다 주지 못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었다.
카메론의 야심은 꺾이지 않는다. 올해 「주라기 공원2」에 맞설 예정이었던 그의 신작은 영화사상 가장 비싼 2억달러의 「타이태닉」. 그러나 카메론이 제작을 늦추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개되는 이 영화에서 카메론은 다시 한번 멜로와 액션과 SFX의 결합을 시도한다.<이윤정 기자>이윤정>
◎터미네이터 2/액체금속인간 통해 보여준 ‘모핑기법’ 탁월
비상하는 헬리콥터를 향해 경찰복장의 T―1000이 오토바이를 몬다. 그대로 공중을 날아 헬기의 다리를 낚아챈다. 머리로 조종석의 유리창을 들이받자마자 몸의 형체가 변한다. 불에 달궈진 쇳물처럼 흐물흐물, 뭉글뭉글 녹으면서 변형되어 헬기안의 좌석으로 스며든다. 다시 형성되는 이목구비, 재구축되는 인간의 형상. 조종간을 잡은 차가운 얼굴이 이쪽을 보면, 경악하는 인간 조종사. 그의 얼굴이 T―1000의 번들거리는 금속 얼굴 표면에 반영된다.
이름하여 모핑(Morphing)기법, 순식간에 벌어진 「디지털 디졸브」다. 영화의 도입부분은 이 장면과 충돌한다. 불타는 목마, 그네, 화염에 휩싸여 벌겋게 타들어가는 놀이터 저 너머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서서히 떠오른다. 붉은 눈을 한 금속가면.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에는 세상의 양극이 뒤섞여 있다. 인간과 기계, 신화와 과학, 휴머니즘과 물질 메커니즘, 과거와 미래, 노스탤지어와 묵시론. 주인공인 존의 아빠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그 사이에 운명은 없다. 우리가 만든 것외에. 여기서 무뚝뚝한 미래 전사의 임무는 인류의 구원이라기 보다 가족의 구원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가족의 이산 현상을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강인한 「육체―기계」의 욕망으로 차단한다. 이 스펙터클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세히 들여다 보자. 위기의 절정마다 우리가 목격하는 강인한 마초, 아버지 슈워제네거. 피투성이가 된 채 우뚝 서서 총기를 난사하는 사내, 아무 표정이 없는 사이버 해결사. 영화는 그가 무릎꿇은 나체로 나올 때 시작하여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속으로 몸을 밀어 넣을 때 끝난다. 가운데 있는 건 춤추며 안무하는 남근. 남근을 소유한 여성이라는 할리우드의 신상품화 전략은, 사라 코너를 전사이지만 여성성을 잃지 않는 전사로 위치시킨다. 슈워제네거는 위기의 절정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것은 시간, 배운 것은 「눈물의 의미」이다. 아카데미상의 금빛 동상을 강력하게 환기하는 저 징그럽고도 황홀한 T―1000의 변신 아이콘은 세기말적이면서 보수적이고, 인본적이면서 파괴적이다.<김정룡 영화평론가>김정룡>
◎디지털시대의 영화/죽은 케네디와 악수하고 꼬마돼지는 말을 하며 배우가 없어도 영화는 완성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보다는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세는 것이 훨씬 빠르다.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카메라로 촬영을 한 뒤 편집을 하고 현상을 해서 완성되는 영화의 제작과정에서 컴퓨터로부터 자유로운 단계를 찾기는 힘들다.
SFX는 영화의 후반작업에 이루어진다. 나날이 발전되는 특수효과 때문에 촬영의 단계가 이전보다 소홀히 여겨질 정도다. 어느 정도의 실수는 후반작업에서 컴퓨터로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SF영화의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개발됐던 특수효과들은 이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느 영화에서나 쓰인다.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과거인물과의 대화를 가능케 했고 「베이브」에서는 돼지가 말을 하게 했으며 「크로우」에서는 죽은 배우를 살려냈다. 때문에 이제 영화속에서 특수효과를 요란하게 드러내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특수효과는 기본이고, 이를 어떻게 교묘하게 숨겨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느냐가 특수효과 팀의 목표가 됐다. 디지털도메인의 「아폴로 13」같은 영화가 특수효과의 쾌거로 꼽히는 것이 이런 이유다.
앞으로 남은 것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다. 「토이스토리」는 컴퓨터가 만들어낸 배우들이 등장하는 100% 컴퓨터 영화였지만 배우들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었다. 섬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잡아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긴하다. 상상력 역시 미답의 경지다. 시나리오를 잘 쓰고 감독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기술이 발달하면 할 수록 더욱 결정적인 요인으로 여겨지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이윤정 기자>이윤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