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의 죽음은,문득 돌아가는 시간을 예고해 남은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무더운 여름과 하늘 높은 가을이 자리 바꿈을 하던 지난 몇주간 여러가지 모습의 죽음이 이어졌다. 일상의 정적을 깨고 늘 지구인의 시선을 자극했던 먼 나라 세자비의 비참한 죽음, 평이한 우리의 삶을 부끄럽게 하던 테레사 수녀님의 선종, 되새기기 힘든 괌에서의 수많은 죽음, 그리고 빛나는 민족의 유산―석굴암이 있는 불국사를 살아 있는 수행도량으로 바꾸신 불국사의 큰 어른 월산 대종사의 원적이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살아 있는 우리에게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며 고맙게 느껴진다.
죽음은 경험의 저편―객관의 장막뒤―에 서서 충격 회한 슬픔 그리움 외경 등의 복잡한 의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죽음은 죽은 한 사람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으며 그 죽음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보다 남겨진 자들의 의식 속에 오래오래 이어지는 것이다.
부처님 재세시 한 여인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몸부림치다 부처님을 찾았다. 죽은 아들을 살려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죽음의 슬픔이 없는 집을 찾아 겨자씨를 얻어오면 그때 아들을 살려 주리라 약속하셨다. 여인은 아들을 찾을 욕심에 마을을 돌고 돌아 죽음이 없는 집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그런 집은 찾을 수 없었다. 여인은 부처님께로 돌아올 즈음 이미 슬픔과 고통을 달래고 평정을 얻고 있었다. 죽음은 나만의 일이 아니었으며 모든 이가 그 슬픔의 강물을 타며 살아 가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지나간 죽음과 오는 죽음 그 사이에서 그나마 작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자식의 죽음을 넘어 중생의 슬픔마저 껴안았던 것이다. 그 후 그 여인은 죽음을 참된 지혜의 자비로 환원하는 아름다운 수행자의 몸이 되었으며, 결국 성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사물은 생주이멸하고 중생은 생로병사하며,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관조하는 삶의 기본이 되는 순환의 진리요 생명관이다. 생한 것은 반드시 멸하며, 멸하는 것은 또다시 태어난다. 무상함과 순환의 진리는 내세적이거나 소극적인 세계관이 아니다. 순환의 진리는 오히려 탄생을 환희로, 죽음을 슬픔으로만 여기는 중생의 속성을 평정한다. 오히려 태어남과 죽음의 무게가 다르지 않으며, 늙음과 젊음의 가치가 둘이 아님을 가르친다. 빛나는 죽음은 뜻있는 삶을 통해 다시 부활하며, 고단한 젊음이 유덕한 늙음의 관용속에서 다시 빛나기 때문이다.
승가에는 지금도 고승의 죽음을 통해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현시한다. 문득 돌아가는 시간을 예고하여 남은 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며, 죽음은 주검이 아니라 하여 문득 가부좌를 한 채로, 물구나무 선 채로, 또는 공양 중에, 또는 신발 한 짝만을 남기며 무한한 열반상을 보인다. 그래서 죽음은 더 이상 어두운 장막 저 편이 아니고 가는 자의 자유속에서 연출되는 또다른 삶일 뿐이다. 죽음은 주검이 아니기에 열반이요 원적이라 이른다. 말 그대로 번뇌의 소멸로 자유로움에 이른 것이며 밝고 환한 빛으로 적멸의 큰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자유인의 죽음은 슬픔과 회한 고통으로 남아 사바세계에 이어지지 않는다. 열반의 의식에서 흔히 독송하는 게송이 있다. 『쾌활쾌활이로다. 빛의 큰 세계로 돌아가는 이여』 축복의 경지이며 밝고 빛나는 새로운 삶에로의 환원의식이다. 종정 스님의 열반법어 또한 참으로 쾌활하다. 『월산 큰 스님이시여, 얼마나 기쁘십니까! 열반의 세계에 오래 머물지 마시고 빨리 사바세계에 돌아오소서』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생을 위해서. 자유로운 이의 열반은 이렇게 경건한 중생의 축제로 넘쳐난다.
순환의 생명관과 그에 따른 의식은 돌아간 자에게나 남은 자에게 보다 깊은 평안과 자유로움을 체험케 한다. 수행자의 법신을 태우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다비의 장에 서서 그 불빛에 빛나는 대중의 얼굴을 보라. 피할 수 없는 순환의 진리와 소멸의 시간을 목격하고 있으나 거대한 원적을 죽은 자와 같이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생멸의 의식 속에서 특별한 자유의 체험과 보다 뜻깊은 삶을 다시 결행하는 의식과 전통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그리고 거룩하고 조용한 순환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소리없이 남다른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의식, 그러나 참으로 슬픈 죽음들, 그리고 그런 죽음들을 위로하듯 다시 돌아오시기 위해 큰 빛으로 떠나신 큰스님의 열반을 기리며 하늘 푸른 좋은 계절에 열반의 기쁨과 순환의 진리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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