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떨린다. 숨이 가쁘다. 둥둥둥둥 북소리만큼 심장박동도 커졌다. 전율이일었다. 21일까지 「트로이의 여인들」을 공연한 드라마센터가 숨을 몰아쉬었다. 첨단기능을 갖추고 최근 재개관한 이 극장은 연출자 안드레이 세르반의 말처럼 공연자와 관객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생명력을 얻었다.한국 동랑연극앙상블과 미국 라마마극장의 배우가 함께 무대에 서는 희랍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고대그리스어로 공연됐지만 내용 전달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고대어의 운율을 바탕으로 단순하면서 비장한 화음과 민속적 가락으로 만든 음악이 먼저 감성을 자극했다. 관객을 무대에 서게 하고 극장 이곳저곳에서 배우들이 출몰하는 볼거리는 관객을 비극의 현장 한가운데로 몰아넣는 체험을 낳았다. 배우들은, 때로 알몸으로 관객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그리스군에 패배한 트로이 여인들의 고난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드러냈다. 세계연극제에 참가하는 외국공연으로는 관객에게 가장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대중적 작품이었다. 한편 평론가들의 반응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초적 의사소통을 이룬 수작』(이혜경) 『무대 안으로 압축된 흥겨운 굿판』(이영미)이라는 호평과 동시에 『별반 새로울 게 없는 카니발연극』(김창화)이라는 악평도 섞였다. 세르반은 이 작품을 74년 초연했다. 쓰여진 건 기원전 415년께. 그러나 우리 말로 하는 우리 연극조차 이만큼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감동을 낳은 작품은 많지 않다.
평균 400여명의 관객이 이 작품을 찾는 동안 세계연극제의 숱한 작품이 일반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묻혀 지나가는 게 현실이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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