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여파 초우량기업도 해외차입 잇달아 실패/‘신용공백’ 조짐… 내달께 S&P평가에도 영향미칠듯채권단의 법정관리결정과 노조의 파업선언으로 인한 기아사태의 파문확산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기업들의 심각한 신용악화가 우려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초우량 간판기업들조차 해외차입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기아사태가 해결보다 파국쪽으로 방향을 선회함에 따라 10월이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됐던 외환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아사태가 장기화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한국계기업 발행채권)은 수요가 없어 아예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은행 국제금융담당자는 『한보사태이후 한동안 우량기관 발행채권과 비우량기관 채권간에 금리차가 크게 벌어지는 신용도별 차등화 현상이 뚜렷했지만 기아사태 이후엔 우량, 비우량에 관계없이 한국물은 매수자가 없어 사실상 거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굴지의 초우량기업들이 해외차입에 실패하는 사례가 이달들어 속출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10억달러규모의 주식예탁증서(DR)발행을 위해 25일 미국에서 투자설명회(로드쇼)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발행가격이 기대에 못미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2주 연기했다. 한 금융계인사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전과 함께 국가신용을 적용받는 한통의 DR발행연기는 곧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 추락을 의미하며 한마디로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미국내 현지자회사와 함께 최근 4억5,600만달러 양키본드(만기 10년)발행을 위해 로드쇼까지 마쳤지만 차입기간 및 금리조건이 맞지 않아 해외기관투자가들의 요청으로 가격책정을 연기한 바 있다. 삼성전기 역시 내달 7일 1억달러규모의 DR발행가격을 책정할 예정이나 시장상황은 극히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억5,000만달러의 DR과 2억달러의 해외전환사채(CB)를 각각 발행하려던 SK텔레콤과 데이콤도 현지투자자들의 한국물기피 및 턱없이 낮은 가격제시로 계획을 연기했다.
사실상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공기업까지도 해외채권발행이 여의치 않은 상태라면 일반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사실상 차입불능사태나 다름없다. 한 당국자는 『해외투자자들은 이달말 채권단의 기아사태 처리결정을 우리나라 신용평가의 잣대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기아사태가 만약 파업 및 조업중단사태로 이어진다면 한국물은 아예 정크본드(위험채권)로 분류될지도 모르며 신용공백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신용도가 추가추락할 경우 국내외환시장 불안도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우량기관을 통한 달러유입」을 전제로 했던 정부의 외환시장안정대책도 실효성을 상실한다. 외환보유고가 빠듯한 상황에서 해외차입이 더 힘들어진다면 기업들의 달러사재기속에 환율은 추가상승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계는 이와 관련, 이달말∼내달초로 예정된 S&P의 신용평가결과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기아사태는 해외차입의 성패를 좌우하는 신용평가결과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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