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진로를 쳐다보다 자충수를 뒀다」채권단의 법정관리방침으로 해체운명을 맞게 된 기아그룹에 대해 금융계는 이같이 평가하고 있다. 채권단 고위인사는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부도유예협약에 회부된 7월15일이후 지난 두달반동안을 반추해보면 기아는 회사를 살릴수도 있는 몇차례의 찬스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실수는 김선홍 회장의 사표제출시기. 기아측은 채권단의 사표요구를 제3자인수를 위한 「음모」로 규정, 사표제출을 거부했지만 바로 이 「음모설」때문에 정부와 채권단은 사표를 받더라도 실제 집행할 수 없었다. 기아에 대한 동정여론과 정부에 대한 의혹이 고조됐던 적절한 시점에, 혹은 「김회장을 퇴진시킬 뜻은 없다」는 정부와 채권단의 유화적 발언이 계속됐던 이달 중순이후라도 퇴진각서를 제출했다면 1,800억원의 긴급자금도 지원받고 최소한 기아자동차 만큼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 결정적 판단착오는 화의신청. 사전협의없이, 더구나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해외출장중인 시점에 터진 기아그룹의 전격적 화의신청은 정부와 채권단의 기아에 대한 불신을 한층 깊게 만들었다. 당시 채권단은 「기아자동차만 정상화」쪽으로 이미 결론을 낸 상태였고 화의신청만 없었더라면 기아자동차는 이 구상대로 당분간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시열 제일은행장은 『기아자동차에 사실상 부도유예를 연장해줄 계획이었으나 전격적 화의신청으로 이 계획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악수를 반복할 만큼 기아측 판단이 흐려진데 대해 『기아가 진로의 전례를 너무 교과서적으로 해석한 것같다』고 설명했다.
부도유예협약 1호 기업인 진로는 오너의 주식포기각서를 거부했고 부도유예기간이 끝나 도산위기에 다시 몰리자 화의로 돌파구를 찾았다. 기아측은 진로를 모델삼아 김회장 사표없이도 채권단이 화의에 동의할 것으로 믿었던 것같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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