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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키우기 공을 들이자/김인자 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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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키우기 공을 들이자/김인자 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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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석연휴동안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려는 알찬 계획이 있었다. 38년간의 서강대 교수직을 퇴임한후 지난날의 미진한 것을 찾아 내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져보고 싶었다. 그런데 앉아도, 누워도, TV를 들여다 보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꾸 자꾸 어린이 나리와 나리 살해용의자와 그 여인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불쌍한 아기에 대한 생각들이 나의 휴식을 방해했다.용의자의 부모는 딸이 용의자인 것을 짐작하고 자수를 권유했다고 보도되었다. 그 부모는 얼마나 황당하고 암담했을까. 나의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자식 키운 자랑말고, 자식 둔 사람은 언제까지나 큰소리 말 것이며, 남의 자식도 함부로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나 역시 상담전문가나 교육자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자식을 둔 어미로서 그 부모들에 대해 말하기는 참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부모가 부모의 역할에는 끝이 없다는 것과 부모와 자녀가 서로 믿음과 사랑을 갖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몇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임신중에는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남을 미워하면 미워한 사람을 닮은 아기를 낳게 된다. 또 자세를 반듯하게 앉아야 반듯한 아이가 된다, 썩은 콩도 먹지 말라, 정한수 떠놓고 혹은 달님보고 축원을 하라는 등의 수많은 경구로 새아기 태어날 준비를 충고하셨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는 그런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가. 그를 사랑하는 부모 남편 친구 선배 선생님들은 그가 자라는 28년동안 그의 마음안에 따뜻한 사람으로 들어앉아 보듬어 줄 수 없었단 말인가. 필경 그는 오랫동안 무엇인가에 대해 괴로워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렇게 오랫동안 외로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울부짖는 소리를 조건없이 들어주는 이가 그토록 없었다는 말인가.

나는 그에게 나리를 죽이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슬프고 외로운 고통은 종종 자신이나 타인에게 파괴적이고 잔인한 공격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환경이 불안하면 특히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은 자기불안과 사회불안이 겹쳐 감당할 능력을 잃고 이상행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정환경이 불안할수록 정상적인 청소년까지도 많은 방황을 한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방황은 하지만 절대로 방종방탕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살해용의자의 행위는 법으로 다스리되 그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치유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가 진정으로 통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어른들이 해야할 또 다른 일들이 있다. 우선 이제부터는 내자식 남의 자식 모두를 당신과 내가 함께 잘 키우고 인도하도록 같이 노력하는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짜고 실천해야만 한다. 내 자식만을 잘 키우는 것이 시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 마음대로 한다 해도 부모자식의 근본적인 관계만은 사랑과 믿음의 관계로서 흔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구체적으로 부모역할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다음으로 어른은 아무리 자식이나 상대방의 행동이 마음에 안들어도 끔찍한 말이나 「이제는 끝장」이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지 말자. 그런 말들은 비수보다 더 무서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자녀의 마음속에 우리 부모가 언제나 영원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들어가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로 어린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가까이 와서 무엇을 주거나 어디를 가자고 할 때에는 거절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평소에도 남이 무엇을 주거나 초대했을 때에는 반드시 부모에게 허락을 받는 예절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것은 자녀가 지켜야 할 의무이며 한편 보호자의 권리라는 점에서 예외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남의 허락이나 양해를 구하는 것, 작은 일에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남에게 입힌 하찮은 피해도 사과하는 것 등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사실은 나리가 이러한 습관만 몸에 배어 있었어도, 살해용의자에게 누군가가 태어날 아기에 대한 태교를 제대로 가르쳐 주었어도, 또는 평시에 괴로운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가까이 있었어도 나리는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고 살해용의자는 차마 그런 파괴적인 행동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우리는 엄밀하게 말해서 직간접적으로 공범자들이다. 안정된 사회를 이끄는 정치지도자, 믿어주는 어른과 선생, 바람직한 교육, 조건없는 사랑을 주는 가정과 친구중 어느 한 끈이라도 우리가 살해용의자에게 주었더라면, 그래서 그 방황하던 여자가 잡고 늘어질 끈이 있기만 했더라면, 그는 용기있게 살아나갈 수 있었을텐데…. 유대인들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전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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