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감으로는 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사나이로 태어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 무슨 흉이냐, 조금만 뛰면 대권이 손에 잡힐듯 한데 누군들 안 뛰겠느냐는 주장도 참을 수가 있다. 그러나 기본 규칙을 파괴하고 선거전에 뛰어드는 사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일단 대통령이 되고 보자는 사람들까지 참고 넘어 갈 수는 없다.한국일보는 며칠전 이인제씨의 대선 출마 선언을 보도하면서 「이의 난」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달았는데,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반란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말을 돌려 자신이 속해있던 당과 어제의 동지들을 치고, 선거의 룰과 국민의 신뢰를 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의 반란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인데, 유권자들의 양식 또한 마비돼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면서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던 그가 난을 일으킨 원인은 이회창 후보의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이고, 그가 내세운 명분은 「3김 중심의 망국적인 지역주의 타파와 세대교체」다. 이회창 후보가 두 아들의 병역 의혹으로 고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병역 면제가 불법이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회창 후보나 그 가족이 명백한 불법행위나 부도덕적인 행위로 지탄을 받고 있다면 몰라도 지금 상황으로는 반란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가 내세운 세대교체론이 아무리 바람직하다고 해도 반란을 기반으로 세대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의 세대교체론은 신한국당 대의원들의 선택에서 일단 뒤로 밀렸던 것인데, 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서는 것은 겨우 시작된 후보경선 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후보의 인기가 떨어졌으니 판을 새로 짜자는 주장이라면, 대통령의 인기가 계속 떨어질 때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김영삼 대통령의 실패는 상당부분 3당합당이라는 과거의 멍에에 원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당합당을 선거에서 제대로 심판하지 않은 유권자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국민의 동참을 호소하던 민주투사가 하루아침에 역대 군사세력과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구국의 결단」이라고 주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민주화 투쟁을 하며 온갖 희생을 당했던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 컸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그것을 투표로 심판하지 않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다.
김대통령은 자신이 「3당합당의 아들」임을 부인하려 했고, 군사세력과 손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는 과거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어 했다. 그는 과거 정권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개혁과 사정, 역사 바로 세우기 등에서 조급함과 과욕과 무리가 따랐던 것은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합당 콤플렉스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의지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라는 과정은 그의 미래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다.
세대교체도 좋고 정권교체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과거의 정치 악습을 가져온 의식의 부패와 폭력성을 청산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인물이 바뀌고 대통령의 나이가 젊어진다 해도 의식이 바뀌지 않는한 정치 행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경선에서 선출된 후보의 인기가 자기보다 뒤진다고 해서 경선 자체를 부인하는 사고방식으로 세대교체를 이룬다 한들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소신도 원칙도 내팽개친채 우선 대통령이 되고 보자고 뛰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바꾸겠는가.
선거판이 날로 어지러워지고 있다. 우리가 한때 기대를 걸었던 인물들이 난장판에 휩쓸려 떠내려 가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정치 혐오감에 젖어 한탄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이번 선거에서는 30% 미만의 지지율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과거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후보 한 사람 한 사람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비교하면서 왜 누구를 지지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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