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업계사이에서 우왕좌왕/고급교통수단을 대중수단으로 전락시킨 ‘요금문제’/아직도 지지부진한 ‘수익금 전액관리제’/제대로 풀리는게 하나도 없다고질적인 불친절과 난폭운전에 대해 시민 불만은 쌓여만 가고 택시기사들은 수입과 근로조건 등이 악화일로라고 볼멘 소리다. 업주는 업주대로 낮은 요금과 교통체증으로 채산성이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장기적인 대책을 검토하기 는 커녕 여론과 택시업계 노사간의 대립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려 온 것은 아닐까.
택시 정책의 실패를 거론할 때 뺄 수 없는 것이 요금문제다. 택시는 마땅히 고급교통수단이어야 하는데도 낮은 요금 수준을 유지, 대중교통수단으로 만들어 버린 것. 서울의 택시요금은 95년에 인상된 이래 2년 가까이 그대로다. 실제 우리나라 영업택시 실차율(영업시간에 대한 운행시간 비율)은 70% 수준으로 일본 미국 등의 50%선에 비해 너무 높다. 서비스 수요가 많다 보니 공급자측의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점진적으로 택시요금을 인상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택시문제가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법적으로는 지난 1일 시행에 들어간 「택시 운송수익금 전액관리제」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아니 애초에 시행을 3년 동안 유보한 것 자체가 업계의 로비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특히 택시서비스 개선에 대한 정부의 노력은 「말」뿐이라는 비난이 높다. 92년 이후 서비스 개선을 위해 택시운전자에 대한 과태료를 대폭 인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지난 7월 건설교통부는 승차거부 등의 위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승객 수가 많거나 휴대화물이 있을 경우 요금을 할증하는 「택시탑승인원·휴대화물 할증제」를 도입키로 했다가 반대 여론에 부닥쳐 이틀만에 백지화하기도 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택시문제는 근본적으로 버스 승용차 지하철 등 도시교통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도시 교통문제가 모두 해결된 뒤에나 택시문제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일까.<김경화 기자>김경화>
◎승차거부·합승·난폭운전… 승객은 봉?
서울 종로의 밤이 12시를 넘기면 음식점과 술집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큰길로 몰린다. 심야좌석버스를 제외하고는 버스와 지하철이 모두 끊긴 시간.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편도 4차선인 도로의 3차선으로까지 몰려 나가 서로 택시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고덕동, 고덕동!』을 목청껏 외치던 40대 남자 두 명은 10여대를 그냥 보낸 뒤에야 겨우 택시를 잡았다. 앞좌석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타고 있다.
비슷한 시간, 경기 평촌 산본 등 과천방향 위성도시 주민들이 몰리는 사당역 근처. 『수원이요, 수원』 『안산 갑니다』는 소리가 요란하다. 단속을 피해 골목 안쪽에 택시를 세워 놓고 호객을 하는 택시기사들이 열명이 넘는다. 행선지가 맞아 떨어져 차에 타더라도 10∼15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승객 4명을 꽉 채울 때까지 기다리는 게 「승객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왜 빨리 안 가느냐』고 따졌다가는 『좀 기다리라』 『딴 차 타고 가라』는 퉁명스런 대답만 들을 뿐이다.
경기 고양 화정동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출근하는 정모(32)씨. 『회식이라도 있는 날에는 심야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따블」은 고마울 지경입니다. 미터기에는 1만5,000원도 안 찍히는데 3만원씩 들어요. 한달에 택시비만 15만원 정도가 나가 차라리 음주운전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김모(27·여)씨는 집이 주택가 깊숙한 곳에 있어 택시를 이용할 때마다 봉변을 자주 당한다.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가 끊긴 뒤에는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어요. 집앞까지 가 달라고 운전기사에게 부탁하면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신경질을 부리거나 가는 동안 내내 훈계를 하기 일쑤죠.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으니 꾹 참고 「제발 한번만 가 주세요」라고 사정할 수 밖에요. 집앞까지 가서는 돈을 더 달라고 하기도 하고…. 아예 한 30분 걷는 게 편할 때가 많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노선이 완벽하지 않은 현재 택시는 어쩔 수 없이 서민의 교통수단이 돼 있다. 어쩌다 친절한 기사를 만나면 감동할 정도로 시민들은 불친절한 택시에 익숙해져 있다. 불친절의 대명사가 된 서울 택시는 손만 들어서는 좀체로 탈 수 없다. 행선지를 외쳐 택시기사의 「낙점」을 받아야 한다. 기껏 구걸해 타더라도 제값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합승손님을 내려주기 위해 가까운 길을 빙 돌아가거나, 라디오를 시끄럽게 틀어 놓고, 멋대로 담배를 꺼내무는 정도는 약과다. 방향이 안 맞으면 올라 탄 손님을 내쫓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시 교통불편신고 전화로 접수된 민원 가운데 택시관련이 4만8,000여건. 올해는 8월말까지 3만1,000여건이 접수돼 시민들의 불만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택시기사를 상전으로 섬기고 있지만 승객이 영원한 「봉」일 수는 없다.<김경화 기자>김경화>
◎저임·중노동·교통체증 ‘기사도 괴롭다’
흔히 승객을 우습게 알고 승객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택시기사는 정말 「왕」일까. 천만의 얘기다. 불만이 가득하기는 승객과 다를 바 없다.
하루 12시간 근무에 두달에 한달은 꼬박 밤낮을 바꿔 일해야 한다. 교통사고 위험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하루 사납금 6만2,000∼6만7,000원은 우선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교통체증에 짜증이 가실 날이 없다. 그래서 택시운전은 3D업종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다. 9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서울 K택시회사 조모(52)씨. 26일의 주간근무를 모두 채운 지난 8월 그의 월급명세서 총액란에는 65만9,578원이 찍혔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을 제하고 남은 돈은 61만5,000원. 사납금을 채우고 남아 따로 가져 가는 돈이 월 50만원쯤 되지만 낮근무조일 때는 사납금 6만7,000원을 채우기도 힘겨운 날이 많다. 조심해도 가끔씩은 내게 되는 범칙금과 식대 등을 빼면 한달에 집에 가져 가는 돈이 100만원도 안될 때가 많다.
야간근무가 많은 달에는 수입이 늘긴 하지만, 그래봤자 120만원선이다. 현실이 이러니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합승, 승차 거부, 난폭 운전과 완전히 결별하지는 못한다. 한달에 이것저것 합쳐 200만원 이상을 버는 택시기사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럽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나도 무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무리를 하다가는 명이 단축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 등록금을 낼 때가 되면 기를 쓰고 벌어야 합니다. 그나마 아내가 부업을 해서 생활비는 겨우 겨우 맞춰 나가고 있습니다. 가끔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해서 이 정도도 못버는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전직을 고려해 보기도 했지만 나이 때문에 핸들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택시기사를 괴롭히는 것은 박봉뿐만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 과도한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리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 두 가지 이상의 질병에 시달린다. 서울시 택시노동조합연맹의 95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17명 중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위장병(48.3%), 성욕감퇴(35.3%), 요통(32.8%), 시력장애(27.4%), 두통(23.3%), 신경통(15.8%) 등 다양한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일을 빼 먹으면 사납금을 자기 돈으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 병을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D택시회사에서 일하는 김모(35)씨. 『시민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한편에서는 합승한다고 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빈자리가 많은데 왜 안 태우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신호를 제대로 지키고 안전운행을 하면 바쁜데 대강대강 빨리 가자고 재촉합니다. 더러 만취한 승객을 태우는 날에는 술주정까지 받아 줘야 해 정말 죽을 맛입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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