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모스크바엔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한다. 밤 최저기온이 영상 1∼2도로 뚝 떨어지는 9월말이면 러시아인들은 곧 닥쳐올 겨울을 앞두고 월동준비로 발걸음이 바빠지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잔뜩 움츠린 러시아인들의 어깨에서 그 징후를 엿볼 수 있다.가을 위기설은 과거 구 소련시절엔 주로 식량부족에서 초래됐다. 기나긴 겨울 텅빈 상점을 쳐다보아야 하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미리미리 겨우내 먹을 식료품을 냉장고나 창고에 채워놓아야 마음이 놓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제 개혁으로 식료품 부족현상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값이 문제가 됐고 나아가 민심을 앞세운 보혁세력간의 갈등이 위기의 실체로 국민들에게 와닿았다. 크렘린-의회간의 극한 대결끝에 의사당을 향해 탱크가 포를 쏘아대던 93년 10월 유혈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건강악화로 「붉은 대륙」이 다시 한번 요동칠 조짐을 보였다.
다행스럽게 올해는 전에 비해 조용한 편이다. 옐친 대통령이 18일 건강한 모습으로 모스크바에서 400㎞떨어진 오룔지방에 내려가 농민들과 올 수확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등 여유를 보였다.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올 겨울 러시아를 괴롭히는 위기는 공공주택 개혁에 따른 주거비의 인상과 이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다. 임금 및 연금 체불이 생활화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공짜였다시피한 주거비용이 몇개월만에 10배 20배 오르니 불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러시아 제2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선 상하수도와 전력, 난방공급에 대한 추가부담으로 시민들이 시위에 나설 태세라고 한다. 또 내년 1월 도입되는 새 화폐가 또 한번 물가인상을 몰고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만만치 않다. 뚜렷한 실체는 없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선과 그 이후를 불안스레 지켜보는 우리와 비슷한 심정으로 러시아도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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