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현의 미학상상적 문학의 품격윤대녕이 오랜만에 발표한 단편 「빛의 걸음걸이」(「문학동네」 가을호)를 반갑게 읽었다. 이 작품의 화자는 세상과 내면적으로 단절되어 있는, 윤대녕 독자들에겐 친근한 인물이다. 서술상의 현재, 친가에 내려와 있는 그는 부모와 누이들이 함께 거처하는 집안을 관찰하면서 가옥에 얽힌 추억, 가족사적 사연, 그의 개인적 정황을 이야기 한다. 그가 펼치는 이야기에는 병든 어머니가 기이한 언행을 보이다 세상을 떠난 하루 동안의 사건이 포함돼 있다. 그 어머니의 죽음은 삶이란 결국 사람 각자의 외로운 유랑이라는, 그가 여러 대목에서 암시하는 테마에 강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토리를 알아보는 것은 윤대녕소설의 독법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라는, 그의 작품 어디서나 중추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미적 속성을 헤아리는 일이다. 여기서 이미지는 단순히 감각에 호소하는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고차원적인 정신적 실재를 경험하게 해주는 대상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지의 발견이란 제임스 조이스가 현현(epiphany)이라고 부른 홀연한 계시의 체험과 동일하다. 「빛의 걸음걸이」의 경우, 햇빛, 붉은 색, 고무신 등의 이미지는 그 사물들에 대한 지각의 쇄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려로서의 삶에 고양된 의의를 부여하는 어떤 섭리를 발현시키는 것이다.
윤대녕 소설이 성취한 현현의 미학은 이른바 거대 서사가 퇴조한 이후 우리 소설에 나타난 여러 양상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은 현대소설의 중요한 특질인 내면 탐구를 실행한 것이면서 또한 합리주의에 맞서는 상상적 문학의 품격을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서로 이질적인 사물이나 장면이 병치된 공간―「빛의 걸음걸이」에 나오는 예를 들면 죽음에 관한 속신과 코다이의 음악, 재래식가옥과 남국의 호텔이 병치된 공간을 배경으로 계시의 순간이 온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더니즘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현의 미학이 서양 모더니즘문학의 전성기에 누렸던 바와 같은 의의를 오늘날의 소설에서도 가지는 가는 숙고할 문제이다.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신비주의로 분류되거나 아니면 대중문화적 취향과 다르지 않은 이미지의 황홀경의 추구로 해석될 여지는 있다. 이미지의 발견이 소설에서 유효하려면 결국 소설의 형식적 요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서사에 소홀한 윤대녕소설의 약점이 이번 단편에서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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