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자가 기업에 투자할 때 공개된 기업의 결산보고서는 중요한 투자결정의 근거가 된다. 만일 기업의 결산보고서가 기업의 재무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속임수가 들어 있다면 이는 경제 신용질서의 큰 축 하나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하지만 우리 기업의 경우 이른바 분식결산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관행처럼 여겨져 왔고 일부 묵인돼 왔던 게 현실이다. 특히 기업의 내용이 부실할수록 분식결산의 유혹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금융기관들은 우리 기업의 회계감사결과를 도외시하기 일쑤다. 증시에 기업관련 루머가 끊이지 않고 투자자 역시 이런 루머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결산보고서 등 기업의 회계감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바가 적지않다.
대법원은 지난주 부실회계감사보고를 믿고 투자했다 당해 기업이 부도가 나 손해를 본 주식투자자에게 결산보고서를 작성한 회계법인으로 하여금 손해를 배상토록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몇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제 회계사나 회계법인은 변칙적인 회계감사로 대주주와 적당히 타협했다간 자신들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회계감사에 대한 엄격한 각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실 일부 회계사들의 경우 공인회계사의 급증과 감사수주의 경쟁과열로 대주주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감사건수를 따오거나 계속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결국 힘없는 소액주주들의 손해를 담보로 대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한 꼴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증시의 소액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투자자보호와 감사인의 책임을 강화한 회계사법의 개정 등 관련법규의 보완이 이루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옴에 따라 투자자들의 유사 소송도 급증할 전망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추세를 감안해 개별소송의 번거로움과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회계사나 회계법인도 이제는 회계감사의 본래의 의미와 책임을 다시 한번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회계감사의 정확성을 제고하는 일은 투자자를 보호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경제선진화를 앞당기는 일이다. 정부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집단소송제가 시행될 경우 선진국처럼 회계법인이 각종 소송에 연루돼 도산하는 사태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차제에 기업감사는 물론 기업신용조사 등에서도 투자자가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분위기가 확립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기업의 신용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수많은 기업부도의 파장이 확대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변칙적인 감사나 신용평가는 우리 경제에 대한 불신만을 키운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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