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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 국책사업 ‘낭비 주범’/사업비 3배 늘어난 고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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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 국책사업 ‘낭비 주범’/사업비 3배 늘어난 고속철

입력
1997.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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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원 날려버린 시화호/사실상 실패 농업투융자/타당성보다 선전효과 우선 졸속추진의 당연한 결과수조원에 달하는 정부의 예산낭비는 주먹구구식 사업 때문이다. 재정조달능력과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기 보다 선전효과를 고려해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해 온 결과다.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서둘러 착공한 후 잦은 설계변경과 부실시공으로 엄청난 예산 낭비를 초래한 대표적 사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내 착공」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 2년만에 타당성 검토와 노선 확정, 설계까지 끝냈다. 사업비 결정도 일반 철도 건설비에 30%를 더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사업비는 89년 5조8,400억원에서 최근 17조6,294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고 개통시기도 5년 11개월이나 늦춰졌다. 노선변경과 부실시공에 따른 설계변경비가 5,795억원에 달하고 임시개통을 위한 기존 철도 전철화 및 역사확충 등에도 9,325억원을 더 들여야 한다. 개통 지연에 따른 운행수입 감소와 부채상환기간 연장으로 인한 금융비용을 합하면 앞으로 실제 손실액은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화호 건설사업은 예산 전액을 날려버린 대표적 사례. 입지검토와 환경평가 부실로 호수가 공장폐수와 생활하수로 가득 차자 당국은 지난달 담수화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바닷물을 채우기로 결정했다. 결국 5,000억원의 사업비가 고스란히 바다속으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건설교통부가 지난 7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개 분야 30개 대형국책사업의 비용은 당초 계획보다 32조원이나 늘었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사업은 3조4,165억원에서 5조7,019억원, 김해공항 확장사업은 739억원에서 2,686억원으로 공사비가 급증했다. 전국 6대 도시 9개 지하철 건설공사는 9조5,842억원에서 13조8,329억원으로, 9개 고속도로 신설 및 확장사업도 6조2,119억원에서 17조8,815억원으로 비용이 불어 났다. 남강 횡성 밀양 용담 영천 등 5개 댐건설비도 1조4,740억원에서 2조8,691억원으로 늘었다. 보상비 증가와 물가상승에 따른 것이라지만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85∼94년의 정부대형공사 165개중 계획대로 끝난 것은 34%인 56개에 불과하며 절반 가량이 2년 이상 공기가 지연됐다. 5년 이상 지연된 사업도 23%나 될 정도로 사업계획이 엉성했으니 사업비가 2∼3배로 늘어날 수 밖에.

문민 정부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때 내놓은 57조원 규모의 농업투융자 사업도 사실상 실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농업투융자 사업의 평가와 개선방안」보고서는 지원대상을 과다하게 잡은데다 모든 농가에 골고루 혜택을 주려는 배분방식을 취하는 바람에 투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농어촌 특산단지 조성사업은 대상 선정 오류까지 겹쳐 1,541개 단지 가운데 63%가 지정이 취소됐다.<배성규 기자>

◎정부투자기관도 방만한 조직 헤픈 씀씀이/“예산·인원 반 줄여도 무관”/자회사 실태는 더욱 한심

예산 낭비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정부투자기관들. 올초 감사원의 「정부투자기관 인력관리 및 급여성 경비 집행실태 감사」에서만 344건의 위법부당 사항이 밝혀졌다. 방만한 조직과 헤픈 씀씀이의 결과다.

정부가 자본금의 50% 이상을 투자한 정부투자기관은 모두 18개. 이중 한국석유개발공사 등 10개 기관은 93∼96년 하위 직원을 줄이는 대신 2급 이상 직원을 최고 159%까지 늘려 가분수형의 기형 조직이 됐다. 한국전기통신공사 등 9개 기관은 활동이 거의 없는 비상근 법률고문에게 월 25만∼50만원을 꼬박꼬박 지급해 왔고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인사적체 해소 방안으로 교육·업무 파견 인원을 93년에 비해 최고 15배까지 늘렸다.

경비 집행 실태도 엉망. 임금 외에 상여금과 실적급을 변칙 인상하고 시간외 근무수당과 휴일 근무수당을 전직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가 하면 임원급여를 정부 임금인상률 가이드라인의 2∼5배나 올린 기관이 많았다.

예산 낭비 유형은 이밖에도 다양하다. 정부투자기관의 예산낭비가 1,000억원에 달했다고 지적한 95년 감사원 보고서에는 위인설관(위인설관)식 인사, 과다한 접대비와 인건비, 중복투자 등을 대표적인 유형으로 들고 있다. 한도의 119∼240%에 이르는 섭외비를 책정해 회식비나 부서 운영비로 쓰는 수법도 널리 퍼져 있다.

이런 방만한 운영으로 18개 정부투자기관의 지난해 당기 순이익은 95년에 비해 28.9%(6,796억원)나 줄었다.

정부투자기관이 출자한 자회사의 실태는 더욱 꼴불견이다. 40여개 정부투자기관 자회사는 임원의 75.4%, 직원의 11.9%를 모회사 임직원 출신으로 충원, 「인사적체 해소용 조직」이라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자회사의 물품을 비싼 값에 사 주는가 하면 경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각종 정부산하기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난 6월 취임한 고속철도관리공단 이사장은 느닷없이 『터가 좋지 않다』며 공단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고 복수상임고문제와 부이사장 증원을 추진해 빈축을 샀다. 여비서와 차량, 운전기사를 따로 두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만 연 1억여원이 추가로 들어 간다.

증권감독원과 증권거래소는 95년 공무원의 2∼4배인 14.2∼28.9%나 급여를 인상했고 섭외성 경비를 90년 대비 508∼1700%로 늘렸다. 생산기술연구원 등 25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자체 수입을 축소 신고하는 수법으로 95∼96년 1,000억원의 정부 출연금을 초과 수령해 판공비와 해외여행비 등으로 썼다.

감사원 관계자가 『일부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산하기관은 조직과 예산을 현재의 50%로 줄여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힐 정도로 예산 낭비가 심각하다.<배성규 기자>

◎예산과정은 어떻게/편성→국회심의→집행→결산 4단계

예산은 편성, 국회 심의, 집행, 결산 등 네 과정을 거친다.

정부 각 부처가 2월말까지 이듬해 사업계획서를 내면 재정경제원 예산실이 이를 검토, 3월말까지 「예산편성 지침」을 각 부처에 내려 보낸다. 각 부처는 5월말까지 예산요구서를 제출하고 재경원 예산실은 「어느 부처에 얼마를 배정할 것인가」를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각 부처는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예산실과 줄다리기를 하고 국회 의원의 로비도 치열해 진다.

8월말 장관협의회와 당정협의를 통해 사업 우선순위와 사업별 예산을 다시 조정하는데 이때 당의 정치적 의지가 반영된다. 당정협의를 거친 예산안은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승인을 거쳐 10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된다.

예산 심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맡는다. 재경원 장관이 예산안 제안설명과 예결위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 대정부 질의 및 답변, 부별 심의, 계수조정을 거쳐 예결위가 예산안을 의결하면 본회의에 상정, 예산을 확정한다. 국회 파행으로 예산안 심의가 지연돼 의결기한인 12월2일을 넘길 때도 있다. 예산 집행은 「어디에 언제 얼마의 자금을 줄 것인가」를 정한 분기별 예산배정계획에 따른다.

집행된 예산은 이듬해 감사원의 회계 검사와 국회 심의를 거친다. 재경원은 2월말까지 각부처에서 세입세출결산 보고서를 받아 6월10일까지 세입세출결산서를 작성해 감사원에 낸다. 감사원은 9월2일까지 결산검사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가 이를 심의·승인함으로써 예산 과정이 모두 끝난다.<배성규 기자>

◎재경원 예산실 ‘막강파워’/직원 150명이 나라살림 75조원 주물러

해마다 7, 8월이면 과천 정부2청사 1동 6층 재정경제원 예산실은 각부처 공무원과 정부투자기관 임직원들로 북적거린다. 이들은 한푼이라도 더 따기 위해 연신 허리를 구부리며 읍소한다. 청와대 감사원 검찰 등 권력기관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지역구 의원들의 재경원 장관실 출입이 잦아 지고 과천 정부청사를 찾으면 으레 예산실에 들른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지원을 받는 각종 단체도 온갖 연줄을 동원해 안간힘을 쓴다.

예산실 직원은 150명. 예산실장(1급)과 4명의 심의관(국장)이 14개과를 통솔한다. 올해 예산실이 75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주물렀으니 한 사람이 평균 약 5,000억원, 한 과가 약 5조4,000억원의 운명을 결정한 셈이다. 권한이 이처럼 크다 보니 정치적 압력과 로비에 견디며 예산을 최종적으로 지켜내야 할 책임도 무겁다. 그러나 예산실이 정말 그런 책임에 충실했던 것인지에 대해 회의가 없지 않다. 오히려 정권의 하수인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느냐는 비난도 있다. 또 예산실 사무관들이 일선 부처의 사업 하나하나를 제대로 검토, 예산을 배분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과연 효율적이냐는 데에 대해서도 의문이 없지 않다.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라 하더라도 일선부처 실무자보다 투명하게 사업을 검토할 수는 없는 만큼 재경원은 예산을 직접 통제하기보다는 각 부처가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예산 절감에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예산절감은 재경원의 배급단계에서 보다는 일선부처의 소비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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