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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는 국회 예산안 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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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는 국회 예산안 심의

입력
1997.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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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협의서 내부결정 실질심사 이름뿐/기간 짧고 상설기구없어 편성서 집행까지 장기적 감시도 역부족국회는 정부 예산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튼실한 나라 살림 계획을 세울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제도나 실제 운영면에서 아직 예산안 심의 기능이 취약한 게 우리 국회의 현주소이다.

국회의 예산안 실질심사 기능이 취약해진 가장 큰 요인은 당정협의이다. 국회심의에 앞서 정부와 여당이 머리를 맞대고 최종 예산안을 협의하는 이 과정에서 예산의 골격이 사실상 다 짜여 진다. 여기서 여당이 「당중점사업」 관련 예산을 집어 넣는다. 철도·도로 개설 등 지역사업 및 공약사업 예산이 주종을 이루며 선거를 앞두고는 그런 색채가 한결 짙어 진다.

당정협의에 대해서는 야당과 재경원이 모두 불만을 표시한다. 예산통으로 알려진 김모의원. 『당정협의에서 모두 결정해 놓고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안을 심의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원들도 문젭니다. 예산을 국가차원에서 보지 않고 자기 지역구에 한푼이라도 더 돌아가게 하려고나 악을 씁니다』

재경원도 경제 논리가 표의 논리에 의해 왜곡돼서는 안된다며 저항해 보지만 언제나 역부족이다. 재경원 예산실의 한 관계자. 『당정협의에서는 주로 당정책 관련 사업이나 지역사업에 예산 배정을 늘립니다. 선거때면 관변 단체 지원예산도 늘어나지요. 누가 봐도 타당성이 없는 사업에도 일단 예산을 배정하고 봅니다. 수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져요. 전체 예산의 우선 순위가 바뀌고 다른 사업에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당정협의를 거친 예산안에 대해 국회가 크게 손을 댈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여당은 반대할 이유가 없고 숫자싸움에서 밀리는 야당은 기본적으로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어렵다. 힘이 부치다 보니 생트집을 잡고 심의를 거부하다가 작은 「선물」을 챙기기도 한다.

국회 예결위가 상설기구가 아니라 임시기구라는 것도 문제다. 전문성과 안정성이 없다. 예산 편성에서 집행까지의 과정을 연중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국회에는 없다.

여야가 예결위원을 심의 능력보다는 다른 정치적 요소를 고려해 「돌려 먹기」식으로 배정하는 것도 문제다. 올해 50명의 예결위원 가운데 80%가 초선의원이다. 예결위의 심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들이 20일도 안되는 기간에 정부가 수개월에 걸쳐 고급 인력을 투입해 만든 예산안을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상임위와 소관 부처의 동질화 현상으로 상임위에서 오히려 예산을 증액하는 예도 잦다. 재경위와 예결위에 모두 소속돼 있는 한 의원은 『재경위에서는 예산을 늘리고 예결위에서는 깎는 꼴』이라고 실토했다.<조재우 기자>

◎결산 심의가 더 문제다/집행후 10개월후 심의/문제있어도 문책 뒤늦어/감사방식도 적법성만 치중/예산운용 효율성은 뒷전

『우리나라 예산은 편성이 끝』이라는 말이 있다. 예산안이 편성된 후 국회심의가 치밀하지 못한 데다 예산 집행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및 환류(피드백) 과정이 없다는 뜻이다.

결산은 전년도 예산의 집행 결과를 정밀히 분석 검토한 뒤 집행중에 있는 다음 예산의 편성에 적용, 예산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 그러나 이 과정은 의외로 아주 소홀히 취급된다. 국회 예산·결산심의 기간은 20일. 이중 대부분은 예산심의에 할애되고 결산심의는 대개 2, 3일이면 끝난다. 의원들도 『예산심의도 부실한데 결산심의는 오죽하겠느냐』고 푸념한다. 비리를 발견해 해당 부처를 문책하려고 해도 이미 장관이 바뀌어 버린 경우가 많다. 『전임 장관이 한 일이라서……』라는 답변에는 의원들도 마땅한 수가 없다.

결산심의 시점도 부적절하다. 예산집행이 끝난지 10개월이나 지나 결산심의를 하다 보니 관심도가 뚝 떨어진다. 또 국회가 스스로 결산 감사를 할 능력도 없고 감사원의 결산감사 보고서를 일일이 검토하고 분석할 시간도 없다.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기관이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이다. 그러나 정부 기관에 대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감사원도 「고도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약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됐지만 율곡사업(군 전력증강사업)에 대해 본격적인 감사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였다.

감사원의 감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행 감사는 예산운용의 합법성 여부에 치우쳐 있고 효율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예산을 남기지 않고 다 썼느냐, 영수증 처리를 잘했느냐를 집중적으로 따진다.

또 감사원이 결산 감사뿐만 아니라 사업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적정 절차를 밟고 있는지, 부처간 협조가 원활한지를 따지는 것을 중요과제로 삼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소리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정경제원이 전년도 예산을 일정 비율로 가감하는 점증주의 방식의 예산편성에서 탈피, 전년도 예산집행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다음해 예산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무성하다. 정부기관에 만연한 비능률적 관행을 철저히 파악하고 예산 집행 실적을 더욱 정교하게 분석해 다음해 예산안 편성에 반영하는 피드백이 제대로 이뤄져야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조재우 기자>

◎전문가 진단/신해룡 국회예산정책심의관·경제학 박사/공청회·정기보고제 도입/정치논리 따른 예산운용에 국회내 제동장치 필요

예산은 국가계획 및 정책의 청사진인 동시에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한 유력한 정책도구다. 그러나 각 부처 예산실무 담당자에게는 「따 내고 보는 것」이고 재경원 예산실로서는 「깎고 보는 것」이다. 국회는 예산을 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집행 부처는 「쓰고 보는 것」으로 여긴다.

효율적 예산 운용의 관건은 예산과정의 첫단계인 예산 편성이다. 예산 편성에서 우선 지적되는 문제점은 경제적 타당성 보다는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각 부처는 최대한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가용 재원의 한계를 넘어 무조건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분야, 모든 사업, 모든 비목에 조금씩 예산을 늘려가는 전년도 답습 위주나 점증주의적 예산편성 관행도 지양해야 한다.

한편 분산투자로 인한 막대한 예산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비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지원해 주는 계속비 및 국고채무 부담 제도를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예산 당국은 재정 경직성을 이유로 계속비 제도를 기피하고 있으며 국고채무부담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꺼린다. 사업 시한을 설정하고 일정 기간후 재검토해 폐지하는 「일몰예산제도」 도입도 바람직하다.

일반회계보다 재원조달과 집행이 상대적으로 쉬운 특별회계와 기금, 공기업부문이 크게 팽창, 재정운영 체제가 지나치게 다원화하고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복잡한 재정지출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도 개선의 여지가 크다. ▲상임위에서 소관 부처 예산을 늘려 주는 경향 ▲예결위 계수조정 과정에서의 낭비적·비생산적 예산 분할 ▲정치적 사안을 볼모로 한 졸속·변칙·파행 예산 심의 ▲당정대 야당의 심의 구도에서 비롯한 형식적인 심사와 심사기간 단축 등을 고쳐야 한다.

국회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국회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예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우선 예결위를 상설화하고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다선 의원을 위원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예산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정부와 감사원으로부터 월별·분기별로 보고를 받는 정기재정보고 제도도 시급하다.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이관하는 것도 장기 과제다. 미국 의회예산처(CBO) 수준으로 예산심의기구를 보강해 국회가 예산관련 자료와 정보를 스스로 수집·관리·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철저한 결산 심의를 통해 행정부의 예산집행을 감독·시정하고 그 결과를 이듬해 예산안 심의에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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