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귀성했던 차량들의 귀경행렬이 18일 늦게까지 줄을 이었다. 하도 귀성 귀경이 어렵기 때문인지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를 「전쟁」이라 부른다. 「쓰레기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른 국민들의 저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두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도 이긴다는 미국의 「윈 윈」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추석맞이 고향 및 귀경길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이를 꼭 전쟁에 비유해야만 할까. 이는 추석이 민족의 축제임을 스스로 부인하는 거나 다름없다. 아무리 축제라고 해도 전쟁판 속에선 흥이 날 리 만무하다.
갈수록 고향이 멀어지고 있다. 고속도로는 주차장처럼 차량들의 홍수를 이뤄 고향길은 더디기만 하다. 그렇지만 매년 이를 거듭하는 동안 처음엔 그토록 무질서하던 귀향길도 달라지고 있다. 질서도 그런대로 많이 잡혔고 기다릴 줄도 알며 이를 즐기는 지혜도 생겼다.
전쟁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겁을 먹고 벌벌 떨거나 긴장하는 사람도 없다. 그 반대로 고향에 대한 기대감으로 모두 들떠 있고 표정조차 평소에 없이 맑다. 「전쟁은 무엇 하나 인간의 생활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프랑스작가 마르탱 뒤 가르(대표작 티보가의 사람들)의 말처럼 고향길을 전쟁처럼 여겼다면 이러한 결과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이라는 살벌한 말을 버릇처럼 아주 쉽게 사용하고 있다. 수없이 침략당한 역사가 뒤를 받치고 있는데다 현재 휴전상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걸핏하면 선전포고를 한다. 역사상 외국을 침략한 일은 거의 없으면서도 전쟁이란 말을 유난히도 좋아하고, 기회만 있으면 「무기」를 드는 것이다.
현재 치르고 있는 쓰레기와의 전쟁이나 귀경전쟁을 제쳐 놓더라도 전쟁의 상대는 범죄 부패 마약 폭력 음주운전 무역 취직 출퇴근 등 수없이 많다. 이것도 부족해 요즘엔 입맛전쟁에 황소개구리 및 야생 고양이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별 희한한 전쟁을 다 경험했거나 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놀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우리 국민들의 강심장은 알아줄 만하다. 우리가 요즘 사용하고 있는 전쟁은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거나 아주 어렵거나 힘든 상황을 비유하기 위함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만큼 우리의 생활이 힘들고 복잡하고 살벌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원래 국가간의 전쟁에선 지면 심한 경우 나라가 없어지는 등 그 결과가 비참하다. 국력을 총동원해 이에 맞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쓰레기 등과 그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이를 제거하거나 멸망시키기는 커녕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으니 공포탄만 쏘아 온 셈이다.
관념대로라면 우리 앞엔 대통령선거란 또 하나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후보를 내는 정당은 당의 힘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일종의 전쟁으로 표현해 왔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축제다. 국민들이 얼마만큼 이를 멋지게 즐기느냐에 따라 나라의 앞날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무어는 「전쟁은 짐승들이나 하는 것이 어울린다. 그러나 어떠한 짐승도 인간만큼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걸핏하면 전쟁이란 수단에 호소하는 인간의 속성을 안타까워했다. 무어의 말은 전쟁이란 말을 무감각하게 사용하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정부부터 전쟁이란 말의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대권주자들도 상대 비방이나 일삼는 전쟁 아닌 정책대결로 대통령선거를 축제로 이끌어야 한다. 전쟁이란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모두 전쟁 불감증에 걸려 있는 상항이다. 정부가 아무리 쓰레기와의 전쟁이나 폭력 등과의 전쟁을 결연한 어조로 선포해도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결과가 신통치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굳이 전쟁이란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 퇴치나 추방운동쯤으로 표현해도 정부의 의지를 얼마든지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실천이다. 전쟁이란 이름을 붙였으면 국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든가, 그러지 못할 바에야 전쟁이란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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