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을 넘나드는 기발함상복의 요부를 연상케하는 온갖 화려한 치장을 다한 검은 드레스, 동양적인 자수로 뒤덮힌 몽고풍 무스탕코트, 보라색 비단에 일일이 손으로 꽃무늬를 누빈 중세 귀부인 드레스, 여자보다 간드러지게 엉덩이를 흔들며 나온 흑인남자모델의 한쪽 어깨에 비스듬이 흘러내리거나 입은채 그대로 짜내려간 듯한 니트 올인원. 동·서양의 지역이나 중세와 현대, 남자와 여자, 창녀와 수녀 등 양극단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의외성과 기발함으로 「역시 고티에」의 카리스마로 관객을 사로잡은 패션쇼가 11일 일본 도쿄에서 펼쳐졌다. 지난 7월 파리 오트 쿠틔르컬렉션에서 발표했던 추동 컬렉션을 옮겨놓은 이번 행사는 도쿄 패션계를 술렁이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도쿄는 세계의 유명디자이너들이 엔화의 인력에 끌려 자주 드나들며 패션쇼를 여는 곳. 그러나 이번 행사는 고티에였기 때문에 달랐다. 고티에가 외국에서 패션쇼를 잘 열지 않는데다 직접 와서 오트쿠틔르 전 컬렉션을 소개하는 것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두차례의 발표로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이너가 전통적 복식의 최고무대인 오트 쿠틔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일시에 잠재운 탁월함은 전위성이나 실험의 뿌리에는 뛰어난 재단과 봉제의 기술적 숙달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고티에마니아들을 열광케할 만했다.
서양식의 석조건물과 정원이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쿄의 고급 사교클럽장인 미쓰이 구락부에서 펼쳐진 고티에의 이번 패션쇼는 옷을 보여주는 데 충실하기 위해 배경음악이나 쇼적인 이벤트성격을 배제한 채 진행된것도 특기할 만했다. 그의 이번 행사는 비지니스 파트너인 일본 옹와드 가시야마사가 아시아지역에서의 홍보와 일본내 오트 쿠틔르 고객을 개척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
고티에는 한국의 중고령층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모르나 패션지망생과 젊은이들에게는 인기 스타와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디자이너. 「패션계의 악동」이라는 별명처럼 고정관념과 상식을 과감하게 깨버리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유머로 패션에 재미와 즐거움을 집어넣고 있다. 80년대 중반이후 유럽의 유명 저널리스트와 바이어들이 뽑는 인기 디자이너의 순위에서 5위밖을 벗어나 본 적이 드물정도. 90년 마돈나가 세계 순회공연에 입어 널리 알려진 고깔같이 뾰족한 브래지어 옷과 코르셋 등의 란제리룩, 요즘 유행하고 있는 남녀의 성적 구분이 모호한 앤드로지너스룩의 창시자다. 14살때부터 디자인 스케치로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18살때 피에르 카르뎅에 의해 어시스턴트로 발탁됐고 25살때부터 독자적인 컬렉션을 가져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에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52년생.<도쿄=박희자 기자>도쿄=박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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