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한다, 안한다」로 그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13일 결국 출사표를 던졌다. 자신이 몸담았던 신한국당을 떠나 신당을 창당, 독자출마키로 한 것이다. 이지사의 가세로 연말 대선구도는 이제 극도의 혼전양상을 면키 어렵게 됐다.그는 이날 출마의 변을 통해 『30년 낡고 병든 3김중심의 망국적 지역주의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며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그의 독자적 출마결정에 제3자가 「감놔라, 배놔라」할 일은 아닌 줄 안다. 또 이것은 오로지 국민이 심판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출마를 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우선 그는 집권당사상 초유의 후보경선 결과를 무참하게 훼손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경선후보를 선출한 전당대회에서 승리자의 손을 맞들고 정권재창출을 다짐한지 불과 며칠만의 「모반」인지라 충격은 더 크다. 이같은 불복행태가 반복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도정에서 경선은 더 이상 뿌리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어렵사리 성사된 여당의 경선은 더 이상 발붙일 공간을 상실하고 말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따라서 이지사는 무엇보다도 경선결과 승복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데 대한 국민적 지탄도 면키 어렵게 됐다. 이것이 그의 대권가도에 무거운 짐이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주장대로 이대표체제로는 승산이 없다고 한다면 당내에서 후보교체를 주장하는 등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정치인은 당장 눈앞의 이해보다는 명분에 따라 행동해야 함은 불문가지다. 아무리 얼룩져 온 우리 정치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정치적신의 만큼은 지켜왔다고 본다. 출마를 위해 그의 말처럼 「정치적 둥지」를 떠나 딴 살림을 차리는 것은 이런 명분에도 분명히 어긋난다. 우리는 그가 이대표의 대안으로 선택되지 않는한 경선결과에 반드시 승복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 이지사 출마를 만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와 신한국당의 대응자세에 대해서도 솔직히 실망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경선결과를 존중한다는 당내의 합의는 과연 있었으며 이 합의를 관철시킬 확신과 리더십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확신 결여가 오늘날의 사태를 몰고왔다면 그것은 이지사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합리적인 설득보다는 들리는 말처럼 「무슨 파일」운운으로 압박한 것이 사실이라면 여간 유감스런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이 문민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각 후보진영의 이해득실 계산이 분주한 가운데 분명한 사실은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에겐 여권표의 분산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안겨 주었다. 또 유권자에겐 5자구도라는 복잡한 선택을 강요하게 됐다. 이제 이들에 대한 선별작업은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됐다. 냉철한 가슴과 날카로운 이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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