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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걸어간 꽃길(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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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걸어간 꽃길(정달영 칼럼)

입력
199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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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의 꽃동네라면 모를 사람이 드물만큼 유명한 이름이다. 같은 이름의 마을이 가평에도 있다. 이름은 「꽃」이지만 내용은 행려병자·부랑자·알코올중독자·걸인 등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호받는 곳이다.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에서 운영해온 임종의 집과 똑같이, 꽃동네 또한 우리 이웃에서 오갈데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드는 보금자리이다.이 꽃동네에서 지난 93년 7월에, 이곳 꽃동네 안에 설립된 수도원에서 서원식 이 있었는데, 그날 평생을 꽃동네에서의 봉사의 삶을 서원한 한 수사가 이런 소감을 글로 써서 남긴 것이 있다.

『서원식 날 저는 하느님께로 부터 가장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 조차 없는」이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할 수 있게 된, 사랑의 은총이 바로 그 선물입니다. 서원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얼마나 깊은 감동에 젖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수사의 당시 나이 38세. 서울의 유수한 의대를 나와 그 대학병원의 스태프로 촉망받던 내과전문의. 세속에서 보장된 모든 「성공」과 「편한 삶」을 내던지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 속절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서 평생을 봉사자로 살게 된 「기쁨」을 그 글은 차분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가 꽃동네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대학 때 받은 장학금의 대가로 공중보건의로서의 봉사를 꽃동네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무수한 행려병자들의 임종을 돌보다가 의사로서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가를 고민했고, 결심이 서자 자신을 더욱 붙잡아매기 위해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속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외로운 임종들의 반려되기를 자임한 것이다.

꽃동네에 가서 발견할 수 있는 「꽃」은 실은 다른 누구도 무엇도 아니다. 꽃동네가 「꽃」일 수 있는 까닭은 그곳에서 땀흘리는 봉사자들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냄새나는 일에 매달린 젊은 봉사자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들이 「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봅니다. 내가 나환자의 상처를 씻어 줄 때 나는 하느님 바로 그분을 돌보아 드리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입니까?』

테레사 수녀의 어록에서 읽는 이 말은 남을 위한 삶, 봉사의 삶에서 얻는 감동과 보람을 깨닫게 한다. 살아 생전에 성인으로 추앙되던 그는 바로 어제 인도의 국장으로, 모든 세계인의 전별을 받으며 하늘의 꽃길을 갔다. 그는 평생을 맨발로 살았으나 그가 걸어간 길이 꽃길이었음은 의심할 수 없다.

그의 알바니아 식 세속이름 아녜스 곤히야 브약스히야의 「곤히야」는 본래 꽃망울의 뜻이라고 한다. 그가 스물한살 때 수녀로서 첫 서원을 하면서 얻은 이름이 리지외의 테레사인데, 이 이름은 「예수의 작은 꽃」으로 더 잘 알려진 성인의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꽃망울, 예수의 작은 꽃이고자 했던 봉사자의 삶 안에서 언제나 「그 분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었다.

그의 장례식이 꽃더미에 묻힌 것은 심장마비로 입원한 병원에서조차 『다른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냥 죽게 내버려달라』고 했던 그의 뜻에는 어긋난 일이다. 그가 생전에 받은 노벨평화상을 비롯한 온갖 영예와 명성 또한 「꽃」으로서의 그의 아름다움과는 무관한 일이었을 것이다. 『쌓아두면 쌓아둘수록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적어집니다.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을 수록 나누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고 했던 그의 가난한 마음만이, 꽃더미보다 더 크고 명성보다 더 영원하다.

3,000만명이 「민족 대이동」을 했다는 추석 귀성 길에는 더러 코스모스 「꽃」이 만개했더라고 전한다. 김성훈 교수의 표현으로는 요즘 농촌이 「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이」가 되어 있다는데, 그같은 난개발의 현실이 속상할망정 오래간만에 재회한 가족공동체는 밤새워 이야기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 사회가 피워내야 할 「꽃」이 진정 무엇인지, 남을 위한 봉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덕목의 「꽃」인지, 이 추석 명절에 고향도 잃고 가족도 잊은 더 소외된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휴일이 되어야 한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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