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권수립기념일인 9일부터 기관 기업소 출판 보도기관 등 모든 단위에서 일제히 「주체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내외통신에 따르면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정권수립 기념 사설에서 1948년을 「주체 37(1948)년」으로,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는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97년 9월9일을 「주체86(1997)년 9월9일」로 각각 표기했다.
중앙방송도 10일 『전국 각지에서는 첫 주체연호를 새기는 역사적인 화폭들이 펼쳐졌다』며 『모든 기관의 각종 문서 증명서 유가증권 상표 우표 건축물기념물에 주체연호를 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 요리사 체험담/“김정일 생선초밥 좋아하고 한국가요 잘불러”
북한당국에 고용돼 3년동안 김정일에게 생선초밥(스시)을 만들어준 한 일본인 요리사가 털어놓은 김정일의 사생활 체험담이 일본 시사월간지 「디스 이즈 요미우리」 10월호에 게재됐다.
87년 조총련계인 「조선은행」 간부의 소개로 일을 시작한 그는 『김정일이 손으로 스시를 집어 먹었으며 한국가요와 일본군가를 자주 불렀다』고 밝혔다. 다음은 신변위협을 우려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요리사의 김정일 체험담을 간추린 것이다.
『하루는 평양시 중앙구역 성동에 있는 김정일 가족의 집인 15호관저에서 200m떨어진 연회장에서 파티가 있었다. 1층은 카지노, 지하에는 수영장이 딸린 2층 건물이었다. 거기에도 「공연조(기쁨조)」의 젊은 아가씨들이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김정일은 소파에 반쯤 누운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털털하면서도 굵은 목소리로 한국노래인 「목포의 눈물」 「이별」, 러시아의 민요, 일본 군가 등을 불렀는데 수준급이었다.
언젠가는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소파에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격노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떠들며 자기의 노래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질풍처럼 방을 나갔나보다 했더니 금방 돌아와 다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어 내가 스시를 만들고 있는 것을 지켜보더니 스시 3∼4개를 연거푸 손으로 집어 먹었다』<도쿄=김철훈 특파원>도쿄=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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