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획득위한 판짜기 찰나주의 흥정만 판쳐/산업사회에 걸맞는 민주화 프로그램 절실역사적으로 오늘날처럼 통치층의 능력과 책임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을 결코 한마디로 단순화시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구조의 다극화에 따른 가치의 다원화, 대중의 출현과 정치화, 등질화의식의 성장으로 인한 급진적인 평등주의, 압력집단의 항상화 등으로 이른바 「국가의 사회화」, 「사회 전체의 정치화」가 진행되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 한국사회는 정치·사회적으로 대중민주주의적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통치층의 통치능력은 정부수립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후진국의 영역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한국정치를 주도하는 권력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적 카리스마와 가부장제적 권위, 지역주의와 배타주의, 혈연 학연 지연 등 이른바 전근대적인 신분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권력의 역학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근대적인 전통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권력의 역학이 대중민주주의적인 정치·사회 상황과 맞물려 정치사회적 위기의 진원이 되고 있다. 현대사회를 예리하게 진단한 칼 만하임은 현대사회의 위기는 기술적·자연과학적 지식이 도덕적인 힘이라든가 사회적 통찰보다 훨씬 발전함으로써 기술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 사이에 불균형이 빚어진데서 기인한다고 설파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정치사상가들은 두 가지의 문제를 부단히 고민해 왔다. 하나는 인간사회에 어떤 형태의 질서를 부여하고 어떤 형태의 삶의 질을 지향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경우에 이러한 이상을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전자가 통치이념의 문제라고 한다면, 후자는 통치방식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정치적 전통을 보면, 이념적으로는 유교문화를 기반으로 오륜 질서를 실현하는 도덕국가를 지향해 왔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정치·사회사를 돌이켜 보면 「규범에서 규범에로」, 이른바 도덕적 규범주의의 경향이 강하다.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권력정치의 전통이 빈곤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전통은 통치방식에도 그대로 관철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은 유교적인 도덕규범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에 착안하였다. 그것이 극화한 형태가 퇴계의 「경」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이는 통치방식에 있어서 내면주의라는 것으로, 그 성향은 현실세계의 이해와 갈등을 인간의 내면세계로 끌어들여 해소시킴으로써 인간사회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결과적으로 체제론의 정치적 전통의 빈곤을 초래하였다.
원래 인간사회의 통치방식은 인간의 본성, 객관적 제도, 정치적 기술의 세 가지를 근본요소로 하고 있다. 유교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친근한 사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치적 전통도 그 연장선상에 구축되고 있다. 오늘날 대중민주주의적 정치·사회상황은 통치층에 있어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의 문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적 전통에서는 인간 본성의 문제가 주로 도덕의 틀 속에서 논의되고 있었을 뿐이어서 이미 통치층의 무능이 노정되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정치적 전통속에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객관적 제도, 정치적 기술에 대한 발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항상 지배적인 경향이 그 방향을 규제해 가고 있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공공의 이념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근자에 와서는 「콩가루당」, 「콩가루사회」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듯이 권력획득을 위한 판짜기, 찰나주의적 흥정, 특권주의 등 권력의 정점에서 저변에 이르기까지 나쁜 습성이 현실을 규제해 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발전사적 위치는 산업사회에 걸맞는 민주화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계획화와 그 실천을 둘러싼 논쟁과 대결이 권력쟁취의 승부를 좌우하는 정치풍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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