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유통 등 부도유예 만료 임박으로 공멸위기감/추석 앞둔 여신회수도 폭증… 일부 채권단 거부 가능성부도유예협약으로 도산위기를 벗어난 것으로 보였던 진로그룹이 결국 「화의」란 비상수단을 택한 까닭은 크게 세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추석을 앞두고 리스 할부금융 렌탈 파이낸스 등 이른바 「제3금융권」의 여신회수공세가 폭증했다. 부도유예협약에 참여한 은행 종금사들은 7월말 협약종료 후에도 (주)진로 진로건설 진로종합식품 진로쿠어스맥주 등 4개 계열사에 6∼14개월의 원금회수유예 혜택을 부여했지만 제3금융권은 계속 어음을 돌렸고 결국 그룹 전체의 자금압박을 초래했다. 여기에 거래선의 외상결제요구마저 겹쳐 진로그룹은 사실상 「추석고비」를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상업은행측은 『진로가 7, 8월중 상환한 제3금융권 여신은 약 260억원』이라며 『제3금융권의 여신회수압박이 계속되는 한 부도유예협약에도 불구, 진로그룹은 정상화가 어려운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둘째, 자구이행의 부진이다. 진로그룹은 총 1조9,148억원(부동산처분 1조2,000억원)의 자구계획을 채권단에 제출했으나 현재까지 이행실적은 2,168억원에 불과하다. 현 부동산경기 여건상 덩치 큰 부동산의 원매자를 찾기가 어렵고 경영정상화도 그만큼 지연될 수 밖에 없어 결국 진로는 채무가 장기간 동결되는 「화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화의신청의 직접적 이유는 정상화대상에서 제외됐던 진로종합유통과 진로인더스트리의 부도유예 만료일(이달 25일)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매각 및 청산대상으로 분류된 2개 계열사는 부도유예가 종료되는 25일이후 어음교환이 한꺼번에 집중될 전망인데 어차피 「빈껍데기」인 이들 회사의 빚상환 책임은 1,500억원의 지급보증을 선 (주)진로가 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주)진로조차 생사가 불투명해져 비상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반적 갱생절차인 법정관리 대신 화의를 선택한 것일까.
그 해답은 「경영권」에 있다. 법정관리는 오너 퇴진을 전제로 법정관리인에 의해 회사가 운영되지만 화의에선 기존 경영권이 보장된다. 극심한 자금난속에서도 주식포기각서 제출을 거부했던 장진호 회장으로선 법정관리는 애초부터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 채권단 역시 채권동결기간이 최장 20년에 달하는 법정관리 보다 5∼7년인 화의가 실속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진로측이 제시한 화의조건은 담보가 있는 채권자, 즉 은행에 매우 유리하게 되어있어 담보없이 거래한 2, 3금융권 및 협력업체들의 경우 상당한 피해와 반발도 예상된다.
또 담보를 넉넉히 확보하고 있는 일부은행과 제2, 3금융권이 화의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법정관리와는 달리 화의기간중에도 담보권은 행사가 가능하므로 담보를 확보한 금융기관들은 굳이 화의를 수용할 이유가 없다. 특히 진로의 화의를 수용할 경우 기아그룹도 「화의」신청을 낼 가능성이 있으므로 채권단이 기아의 운신폭을 제한하기 위해 진로의 화의도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한편 금융권에선 진로그룹 화의신청을 계기로 부도유예협약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간부는 『협약 1, 2호 기업인 진로와 대농이 결국 기존 부실기업처리절차인 화의와 법정관리로 넘어갔다는 것은 협약이 부실징후기업 정상화의 새로운 제도로 한계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부실기업은 처음부터 화의나 법정관리로 가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했던 화의제도가 대기업에 첫 적용됨에 따라 향후 부실기업정리에 새로운 모델이 될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성철 기자>이성철>
◎화의제도/채권자 동의얻어 채무동결·경영권은 유지
화의제도는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에 대해 부채를 동결한다는 점에서는 법정관리와 같지만 채권자의 사전동의를 얻어 법원이 결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화의제도는 채권자와 채무 기업이 서로 합의해 부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유예시켜주는 것이며 기업의 기존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에 따라 채무 기업은 당장 파산을 면하고 회사를 되살릴 기회를 갖게 되며 채권자는 채무 기업이 망해 돈을 아예 돌려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화의제도의 장점이다. 반면 해당 기업이 일시적인 어려움만 벗어나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채권자와 채무기업간에 채무 동결 기간과 방법 등 세부적인 화의안을 마련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법정관리 보다 신청요건이 엄격하고 결정이 더딘 결점도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주로 소규모 기업에 대해 화의가 이뤄져 왔으나 중견기업인 동신주택이 처음으로 화의에 의한 회사 갱생 절차를 밟게 된 이후 새로운 회사갱생 방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재벌이 화의를 추진한 것은 진로가 처음이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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