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상한 논설위원」/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상한 논설위원」/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9.05 00:00
0 0

지난번 이 난에 쓴 「이상한 아버지」 제하의 졸고를 읽어 주고 못마땅한 점을 꾸짖어 온 독자가 있어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뜻으로 내나름의 답변을 해 보고 싶다.그의 항의를 요약하면 이렇다.

『세상에 자기 아들을 군에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될 수만 있으면 안 보내고 싶지만 돈 없고 빽 없으니 할 수 없이 보내는 것 아닌가. 누구를 붙잡고 물어 봐도 같은 얘기일 텐데, 그런 인심을 모른 체하고, 자식을 군에 안 보내려는 아버지를 이상한 아버지라고 말하다니 제 정신을 가지고 하는 소린가. 그들이 이상한 아버지가 아니고 바로 당신이 이상한 논설위원 아닌가』라고까지 그는 화를 냈다.

이 익명의 독자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그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가지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병역시비에 몰려 있는 이회창씨도 자식 아끼는 마음은 세상의 범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니, 그 지위를 이용해서 두 아들을 군에 안 보내려 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이제까지 드러난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그 의혹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그는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항변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기에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반사회적 독소가 내포돼 있다. 혼자만의 주장일지도 모를 생각을 천하의 공론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획일주의적 사고 방식이 그렇고, 입대할 당자는 물론 모든 아버지가 자식을 군에 보내기 싫어한다는 파괴적 논리가 그러하다.

군에 가는 것은 싫고 좋고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도의적 결단이요, 자기희생의 의지다. 그 때문에 군 입대는 지극히 개인적 결정일 수 밖에 없다. 누가 가라고 해서 갈 일도 아니고, 말린다고 주저앉을 일도 아니다.

신병훈련소에 가서 제일 먼저 익히게 되는 군가가 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 잠을 이룬다>

이 노래처럼 군인은 늙은 부모와 누이와 어린 동생을 적으로부터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나라를 구하고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도 강요된 집단적 의지보다는 이같은 개인적 결단이 모일 때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임진왜란, 한일합방 때의 의병이나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들, 6·25때 해외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해 전선에서 희생된 이름없는 이들의 의로운 죽음들도 다 개인의 결단이었음이 분명하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가 군 입대를 피하려 하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자식을 군에 안 보내려 한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 죽음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군에 입대한 젊은이가 이 독자의 주장처럼 돈 없고 빽 없어 몸으로 때운다고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다면, 3년이 채 못되는 복무기간이 30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그 개인에게도, 군대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군대는 집단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체이지만, 그 안에서 행동의 의미와 개인적 가치를 발견해 내는 일은 얼마든지 자기 자신의 몫이다. 우리 국군장병이 모두 돈 없고 빽 없어 할 수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폭언이다.

그래도 의문이 있다면 군인에게 물어보라. 그런 대답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첫번째일 것이지만, 그들은 곧 그 의무 이상의 가치를 나름대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군 입대에 대한 획일적 가치관이 위험한 이유다. 민주군대의 대적은 바로 그런 파괴적 획일주의 사고방식이다.

「자기가 소유한 것을 가장 풍요한 자산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는 그가 비록 이 세상의 주인이라도 불행하다」

옛날 그리스에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