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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과 언어폭력/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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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과 언어폭력/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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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치판에 정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요즘 여야 사이에 오가는 성명전을 보면 한심스럽다. 오익제씨 월북을 기화로 불거진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사이의 해묵은 사상공방과 색깔논쟁은 급기야 저질의 인신공격으로 번져가면서 상식의 궤를 이탈하고 있다.사실 우리 사회에는 선거철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색깔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여야 사이의 진흙탕 싸움에서 볼 수 있듯이 아마도 대선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하게 되면 이른바 황장엽파일의 공개와 함께 재연될 소지가 많은 것이 용공시비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선거를 돌아보면 정당들의 이념이나 정책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주로 후보자의 이미지 형성에 의해 그 승패가 갈리는 경향이 많았다. 분명 여야 정당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권력의 장악여부에 따른 구분일 뿐 정강정책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정당구조이다. 그러기에 선거다운 선거를 치른 경험도 짧지만 비록 선거가 제대로 치러져도 정책대결이 이뤄지기 어렵다. 그동안 3김이라는 가부장적 보스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카르텔이 지역을 볼모로 하여 만들어져 온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셈이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격론과 화합의 장으로서 이번 대선을 축제처럼 치러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네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즉 권력게임으로서 대통령 선거가 있을 뿐이다. 지금 돌아가는 정황을 보더라도 여야를 불문하고 새로운 세기에 대한 준비는 고사하고 당장 불어닥칠지 모를 경기불황과 외환위기를 극복할 냉철한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어 보인다. 서글프게도 민생현안에 대한 뜨거운 토론은 찾기 어렵고 상대후보에 대한 지저분한 흠집내기만 오가고 있다. 재산형성, 신상문제, 혹은 사상편력 등에서 치부와 약점을 찾아 인격을 송두리째 매도해 버리는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이성보다 감정이 판치는 선거에서 비전이나 철학을 찾는 것 자체가 무리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정치는 그 수단으로써 권력의 폭력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포함한다. 용공조작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언어폭력이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언어폭력에 의한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당사자의 피해는 물론이고 사회균열의 골이 더 깊게 파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용공시비를 분단의 비극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동안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물론 한반도는 아직도 지구위에 남은 마지막 냉전의 고도로 존재하지만 종전의 좌우구도를 가지고 작금 일어나고 있는 지구화, 개방화, 정보화의 추세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탈냉전시대에는 전세계적인 이념변화를 국익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는 예지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언어폭력을 통해 더 이상 증오와 공포가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지난날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몰고온 폐해는 엄청나다. 정부 및 민간분야의 무고한 인사들이 반공이란 미명아래 「붉은 사냥」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러한 용공조작과 마녀재판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은 결국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남용을 제한하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더욱 심화시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주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퍼시픽포럼에 참석한 하버드대학의 올란도 페터슨 교수는 미국출판상 수상작인 그의 「자유론」(91년)에서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으로 시민의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보다 질 높은 민주주의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시민이면 누구나 언론과 출판의 자유 뿐만 아니라 사상과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미덕은 다수가 소수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데 있다. 특히 자신과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할 때 자유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가 개방사회에 살고 있다면 서로 닫힌 마음을 열어야 한다. 관용과 이해가 오만과 편견을 넘어섬으로써 좌우이념이 갖는 독단과 아집의 폐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국민은 지금 사상공방과 색깔논쟁에 식상해 있다. 이래 가지고야 21세기 통일시대의 국민통합과 민족형성이 가능하겠는가. 언어폭력이 없는 신선한 정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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