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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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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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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을 건드렸다」는 말이 있다. 역린이란 한비자의 세난편에 나오는 말로 용의 목아래 부분에 있는 직경 한자쯤 되는 거꾸로 선 비늘을 일컫는다고 한다. 용은 평소엔 화를 내지 않지만 역린을 건드리면 건드린 자를 반드시 죽인다고 한다. ◆옛 왕권 시대에 용은 곧 임금이었다. 임금도 역린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상소나 간언을 해도 좋지만 임금의 역린을 건드려선 일을 도모치 못했다. 한마디로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인 오늘에도 역린이라는 이른바 성역은 존재하는 것 같다. ◆역린을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고유권한이나 권위 정도가 무방할 듯 싶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언급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추석전 사면 건의를 김영삼 대통령이 거부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청와대의 공식적인 배경 설명이다. ◆이대표는 과거 총리시절에도 안보문제와 관련해 총리에게 보장된 법적인 위상을 주장하다 전격 경질된 적이 있다. 이때도 청와대측은 안보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간에선 역린을 건드렸다고들 여겼다. ◆기아문제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이유도 기아가 정부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로선 일개 기업에 권위를 우롱당하고 부총리의 진퇴문제마저 제기되자 기어코 기아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심산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상대의 적법한 권위와 권한을 인정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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