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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정책과제/김세원 서울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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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정책과제/김세원 서울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입력
1997.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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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정책 방황계속땐 한 기업의 부도로/국민경제 위기 치닫는 부작용 반복 못면한다「사람들은 단지 필요를 느낄 때 변화를 추구하고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만 비로소 필요를 받아들인다」

최근의 경제상황을 보면서 유럽통합을 이끈 주역중의 한 사람인 J 모네의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동안 국제화나 세계화가 그렇게 강조되었으면서도 실제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제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 금년초 한보사태에서 비롯된 경제불안은 급기야 경제위기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며 획기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최근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무구조 개선과 계열기업 정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위기의식―필요―변화의 조짐은 금융기관들에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세확장에만 주력해 오던 종전의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 감량경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기업 구조조정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정부가 「시장에 맡긴다」는 정책기조를 통해 기대했던 긍정적 효과의 한 측면일 수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으며 국가경제의 차원에서는 전문화의 재편성에 있다. 따라서 현재 일고 있는 변화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의문을 갖는 것은 과연 어떤 시장을 만드느냐는 것과 함께 정부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느 나라건 정부의 역할은 사회적 특성과 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적절하게 연결시켜 주는데 있다.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정부가 취한 조치는 한마디로 부도유예협약이라는 관행의 정착이다. 그나마 최근 폐지와 보완사이를 오감으로써 시장불안을 더 해주고 있다. 다행히 파산·법정관리를 포함하는 부실기업 정리와 관련한 각종 제도의 정비가 준비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기업구조조정이 원만히 진행되려면 시장논리에 따라 진입 및 퇴출장벽이 제거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법·제도 도입의 취지가 단지 특정기업을 겨냥하거나 당면과제를 해결하려는 단기적 목적에 두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또한 부실 경영의 결과에 따른 시장퇴출의 자유는 그 원인을 제거해 줌으로써 건실경영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도 동시에 마련해 줄 때 비로소 의의를 갖는다. 체계와 균형을 갖춘 법·제도의 도입을 통하여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시장경제의 틀을 마련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경우 소유·지배구조가 제대로 확립되어야 한다. 흔히 대표적인 형태로 자본시장 중심의 미국식 모형이나 내부통제 중심의 독일 및 일본식 모형이 인용된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주주권 보호나 이사회제도가 원칙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부도위기도 따지고 보면 기업내 의사결정 체계나 경영감시제도의 후진성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

다음, 정부의 재벌정책이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한 잇따른 연쇄부도의 파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계열기업간 내부거래, 지배주주의 경영권 남용, 무리한 세확장 및 정부의 무력한 감시기능 등을 시정할 수 있는 법·제도가 시급히 정착되어야 한다. 이런 관행이 지속된다면 결국 재벌기업내 부도위기가 국민경제의 위기로 파급되는 오늘날과 같은 부작용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법·제도의 확립은 중장기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현 정부에 그 마무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단지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려면 시장질서의 확립을 내용으로 하는 전반적인 게임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편 위기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구태여 구조조정 과정의 한 국면으로 파악한다면 이 위기는 한국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이기도 하다. 현재의 어려운 여건을 잘 관리함으로써 「보람있는 비용」으로 흡수하고 구조조정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혜가 요청된다. 금융 외환 실물 및 자본시장이 회생곤란한 상태로 접어들지 않도록 정부는 단기대책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지난 주초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끝으로 정부 역시 최근의 상황이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바란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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