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각국여성 7만명 ‘성노리개’/중·동남아 등 400곳 설치… 열두살 소녀까지 끌고가/종전후엔 내팽개치거나 학살·확인생존자 600여명2차 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전선으로 강제로 끌려간 여성은 모두 20만명선으로 추정된다. 이중 7만여명이 군 위안부로 동원됐으며 이중 대다수는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는 열두세살부터 스무살이 채 안된 꽃다운 한국 처녀들을 중국과 동남아 전선까지 끌고가 「성노리개」로 삼았다.
일제는 대략 1932년 상하이(상해) 사변을 전후해 군대를 위한 위안소를 설치했다. 이후 위안소는 일본군 점령지에 예외없이 존재했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난 1945년 8월까지 규모와 지리적 범위가 계속 확대됐다.
현재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국내외 한국인 위안부 생존자는 160여명에 불과하다. 위안부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무참히 살해되거나 일부는 「더럽혀진 몸」으로 조국에 돌아갈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에는 중국 윈난(운남)성 텅충(등충)현 미얀마(버마) 국경지대에서 1944년 9월13일 일본군에 의해 총살된 한국 위안부 30명의 사진이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군은 당시 이들을 정글에서 집단 학살한 채 내팽개쳤다. 또 훈할머니처럼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 몸을 숨겨 살고 있는 위안부도 적지 않다.
위안부들은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베트남 파푸아뉴기니 홍콩 마카오와 남태평양의 섬 등에서 지옥같은 삶을 강요받았다. 한 일본군 군의관에 따르면 1943년 1월 현재 중국에 280개소, 동남아에 100개소, 사할린에 10개소등 모두 400개소의 위안소가 있었다.
일제는 이들을 「좋은데 취직시켜 주겠다」고 유인하거나 납치, 강제연행을 일삼았다. 일본 방위청 문서고의 공문서에 따르면 1938년 육군성 차관 우즈메는 중국 주둔 일본군에게 위안부 모집은 파견군이 통제하고 현지 헌병과 협조하라고 지시, 일제가 직접 관여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일제에 짓밟힌 모든 국가가 포함된다. 수만명이 끌려간 필리핀에는 현재 168명의 생존자가 남아 있다. 그러나 92년 9월 『나는 15세때인 1942년 마닐라의 일본군 기지로 끌려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필리핀에서 최초로 위안부임을 증언한 마리아 로사 헨슨씨가 19일 사망하는 등 생존자는 줄고 있다. 수만명이 끌려갔던 인도네시아와 대만에도 각각 249명과 100여명의 위안부가 생존해 있다. 이들은 일본이 민간차원의 보상을 추진하는 데 반발,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일제는 또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점령지에서 포로가 된 네덜란드인 등 백인 여성들도 닥치는대로 위안부로 끌고 갔다.<이종수 기자>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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