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할머니 인생역정 통한으로 점철훈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유전은 우리의 근·현대사가 낳은 가장 비극적인 드라마의 축소판이다. 17,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제에 의해 「성의 노예」로 캄보디아에 끌려가 이름도, 가족도, 모국어마저도 잊어야 했던 그의 통한의 삶은 또다시 킬링필드의 와중에 외아들마저 학살당하는 단장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할머니는 42년말께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경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부산에서 배를 탔다. 울부짖으며 혼절하는 어머니를 뒤로 남긴 채였다. 대만과 싱가포르 베트남을 거쳐 두달 가까운 항해끝에 도착한 곳은 캄보디아의 프놈펜. 항해 도중에 들렀던 싱가포르의 일본군 막사에서 한달가량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던 짐승같은 생활은 프놈펜 교외의 위안소로 옮겨져서도 계속됐다. 일본군의 패망이 가까워 오던 45년 3월께. 위안소를 찾은 일본군장교 다다쿠마 쓰토무(지웅력·76)의 눈에 띄어 그와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본인 남편을 따라 정글속으로 숨어들었다. 다다쿠마가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할머니를 붙잡고 『함께 살자』며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정글의 진흙탕 속에서 딸 카오를 낳아 키우며 생계를 잇기 위해 밤새 피륙을 짰다. 가끔씩 들러 돈을 내놓기도 했던 다다쿠마는 얼마쯤 지나자 소식이 끊겼다.
일본인 남편과 생이별한 뒤 사기까지 당해 어렵게 생활하던 할머니는 캄보디아인 남편을 만나 새 살림을 차리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다. 그러나 고단한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크메르루주정권이 들어서면서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할머니는 살기 위해 「한국인」이며 「일본군 아내」였던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겨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마저 외출했다 크메르루주군에게 처형됐다. 할머니는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했으나 가까스로 불심으로 마음을 추스렸다.
할머니는 술독에 빠진 남편을 떠나 카오(94년 사망)의 딸인 네 외손녀와 함께 프놈펜에서 79㎞ 떨어진 스쿤에서 어렵사리 생활해 왔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우연히 이 곳에 들른 한국인 사업가 황기연(43)씨와 만났다. 54년만에 처음 한국인을 만난 것이다. 이후 할머니의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고 본사의 초청으로 4일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았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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