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유예협약을 폐지하든, 보완하든, 법제화하든 현재로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28일 하오 강경식 경제부총리를 만난 출입기자들은 귀를 의심했다.어제까지만 해도 강부총리를 포함한 재경원 관리들은 협약을 가리켜 『참 좋은 제도』 『부실기업 정리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틀전인 국회 재경위에서도 「협약의 폐지는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었다. 더구나 협약은 지난 4월 금융기관의 자율협약형식으로 탄생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강부총리의 「작품」이다.
그런데 협약이 이날부터 「금과옥조」에서 「애물단지」로 격하돼 심지어 침뱉기까지 당하기 시작했다. 재경원 당국자들은 『협약이 없었다면 기아사태가 발생한지 한달반이나 된 지금쯤 수습국면에 들어섰을 것』 『협약을 전면폐지해 과거처럼 되돌아갈 수도 있다』라며 한술 더 떴다.
같은 시각, 금융기관들이 자금사정이 나쁜 재벌그룹에 대한 채권을 회수하려 한다는 루머가 증폭됐고 이 바람에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치는 등 투자심리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사실 「협약을 폐지할 수도 있다」는 경제총수의 이같은 발언이 당장 경제에 소용돌이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재정원은 협약의 폐지에는 무게를 두지 않은 것 같다. 『좋은 제도가 특정기업에 의해 철저하게 악용·농락당하고 있다』는게 재경원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기아그룹을 압박하기 위해, 「협약폐지방침」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기아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음모설」에 흥분, 정부마저 기아처럼 국민경제를 볼모로 정책을 펼쳐서는 안된다. 정부당국이나 기아그룹 모두 국가경제를 인질로 삼아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연약한 꽃이라는 경제. 꽃봉우리를 터뜨리려다 그냥 시들어 버릴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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