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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하는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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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하는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한국인터뷰)

입력
1997.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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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현실 안주말고 고민을”/남녀평등 개념 헌법명문화/학자로서 보람·자부심 느껴/‘이대 한계도달’ 평가 섭섭/최고 지향 끊임없이 노력일찍이 소명을 알고 그것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28일 교수직 정년퇴임식과 함께 제자들이 마련한 조촐한 저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윤후정(65) 이화여대 명예총장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조국과 조국의 여성을 위해 살겠다」는 갈래머리 소녀적의 꿈을 온 힘을 다해 이룬후 이제 큰 짐을 덜고 평화로운 노년을 맞으려 한다. 한국 최초의 여성헌법학자, 이화여대 총장으로 누구보다 벅찬 삶을 살아온 그를 통해 여성교육의 갈 길과 올바른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듣는다.

□대담=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

―이화여대에 봉직한지 42년만에 정년퇴임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이화의 가치나 정신, 이념은 무척 소중한 것입니다. 그처럼 소중한 터에서 내 모든 정성과 열의를 다해 공부하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사노라면 여러가지 뜻하지 않은 일들이 있어 원하지 않아도 이곳 저곳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헌법학자로서, 또 이화여대의 총장으로서 도전적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를 지탱한 힘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중학생때 월남해 10년 넘게 고학하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원칙을 터득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작정한 일에 일념으로 매달리는 것,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것들이 나를 지탱했다고 봅니다. 인생에는 도처에 함정과 난관이 있어서 우리를 좌절하게 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이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총장이란 직분은 한 인간의 모든 것, 24시간의 전력투구를 요구하는 것인데 어린 시절부터 강한 트레이닝을 한 덕분에 중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법학을 전공하는 여성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헌법학자는 드문데 어떻게 헌법을 택하게 되셨습니까. 여성헌법학자로서 보람있는 일이 있었다면….

『저도 처음에는 민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지도교수이던 이영섭 전 대법원장께서 「윤군은 공법을 하는게 맞겠다」며 헌법으로 바꿀 것을 권하셨어요. 결과적으로 참 옳은 충고였고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헌법은 정치·경제질서 등 나라의 근간이 되는 이치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즉 역할이 크다는 것이지요. 특히 보람으로 남는 것은 80년 제8차 개헌때 여성계의 개헌안 작업에 참여하여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헌법(제36조)에 명문화한 것입니다. 즉 남녀평등의 개념을 법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지요. 부부관계에서 여성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인정하도록 하는 등 여성의 권리신장에 작지만 일역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밖에 법여성학의 정립에 기여한 것도 보람으로 남습니다』

―우리의 헌정사는 매우 불행했습니다. 많은 학자를 자의반 타의반 어용학자로 전락시켰습니다. 헌법학자로서 더욱 어려움이 컸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어려서 정치가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소녀시절부터 유난히 조국과 여성의 아픔에 대한 자각이 강했거든요. 그러나 해방이후 전개되는 정치상황이 저로 하여금 법학을 택하게 했습니다. 우습지만 역대 정권으로부터 두어번 입각요청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또한 헌법학자들은 개헌 때마다 초안위원이나 연구위원으로 참여할 것을 강권받지요. 다들 무리없이 거절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유신시절 저도 정부로부터 초안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고민이 됐지요. 저는 본래 화초가꾸기를 좋아했는데 뜰에서 화초를 가꾸다가 마침 다리를 삐었어요. 「잘 됐다」 싶어서 그날로 이불 쓰고 누웠어요. 겨우 빠져 나왔지요.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윤명예총장께서는 총장의 경영능력이 요구되는 시기(90∼96년)에 선임돼 남성 못지않게 의욕적으로 뛰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려운 일은 없으셨읍니까.

『내가 총장에 취임한 90년대 초는 이화로서도 격변기였고 세계사적으로도 큰 변화가 이뤄진 시기입니다. 또한 80년대 군사정권하에서 막히고 고였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시기였지요. 이화 역시 양적인 팽창에 이어 질적인 도약을 요구받는 때였어요.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지요. 나는 본래 남 앞에 손 벌리는데 익숙하지 못해요. 돈을 요구하려면 등골에 진땀이 흐를때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화를 위한 일이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어요. 다행히 이화출신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이 『빚을 졌으니까 갚아야지요』라며 선뜻 큰 돈을 쾌척해주었어요. 그래서 좋은 교수를 유치하고 시스템을 전산화하며 도서관을 현대화하는 등 큰 일을 해낼 수 있었읍니다. 그 일을 하며 「이화가 이 사회에 공헌한 게 많구나」하고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이화는 지난 세기 어둠속에 있던 이 나라 여성들에게 빛이었습니다. 많은 여성지도자들이 이화를 통해 성장했고 나아가 나라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화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말도 합니다. 선생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이들이 많은데 섭섭합니다. 미국의 웰슬리대 등 세계적인 명문여대들이 80년대 여대로서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떻습니까. 타대학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고, 거기에 더하여 독특한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화여대는 95년 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한 사립대평가에서 학교의 시설, 교수와 학생 수준, 철학과 비전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화여대는 여론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사고와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들려주시죠.

『두어달전 10여년만에 집수리를 하며 책 한줄 보지않고 아무 생각없이 지낸 적이 있어요. 마음은 그럴 수 없이 편한데 바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지성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나는 여성이 꼭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가정주부도 자신의 발전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다면 훌륭한 삶을 가꿀 수 있지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국여성의 역량은 대단합니다. 요즘 여성들이 주동이 돼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는데 이런 역량을 좋은 쪽으로 세력화해야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써오던 책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또 엄두가 나지 않아 제쳐 두었던 한문공부도 하고 싶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를 들을 생각입니다. 또한 이화의 발전에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발벗고 나서겠습니다』

―신조를 들려주시죠.

『우리 이화인은 모두들 실천하고 있는 것인데 「내가 있으면서도 내가 없는 삶」, 즉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헌신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있다면 하느님 앞에 바로 서는 삶을 들 수 있습니다』

□약력

▲1932년 함남 안변 태생 ▲55년 이화여대 법학과 졸 ▲57년 이화여대 대학원 법학석사 ▲62∼63년 미 루이스빌대 정치학 석사과정 ▲64년 예일대 법학석사 72년 노스웨스턴대 법학박사 ▲61∼66년 이화여대 조교수 66∼73년 부교수 73∼90년 교수 ▲79∼85년 법정대학 학장 ▲89∼90년 대학원장 ▲90∼96년 총장 ▲현재 명예총장 ▲84∼86년 한국여성학회장 ▲93년 공동체의식개혁 국민운동협의회 공동의장 ▲93∼94년 대법원 사법제도발전위원회 부위원장 ▲94년 한국사립대총학장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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