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계속되는 짜증더위에 설상가상으로 서민들을 우울하고 심기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 많다. 우선 정치판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여야간의 이전투구식 대립을 위시해서 대선주자들간의 저차원적 치받기를 매일 대하면서 대저 이 사람들이 누구를 위해 대통령이 되고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회의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루하루 살기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고통과 사회질서, 바닥을 헤매는 경제 등 각종 현안문제 해결을 과연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는지.지도급 인사 및 자제들의 병역시비 문제도 결코 간단치가 않다. 이들의 병역문제에 대한 적법절차여부를 떠나 최전방 일선에 자식들을 내보내는 말없는 다수 서민 부모들의 정서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죄송하다」는 한 두마디의 뒤늦은 정치적 제스처나 강성 참모진 포진을 통한 상대편 역공으로 해서 침묵의 다수가 가슴깊이 되뇌이고 있는 「불공평한 병역의무」에 따른 아픈 상처가 곧 잊혀지리라 생각하는가.
그런 발상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군대가면 손해다」라는 자조적인 서민정서가 「국회의원 25%가 군대에 안갔다」는 현실과 무관하겠는가.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군대에 갈 수 없을 정도의 신체장애인들을 우대해서 국회의원 만들고 장관에 임명하는 특수 선진복지국가란 말인가. 대통령이 되기전에 병역문제는 결코 작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크고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하리라.
다시 대두된 색깔논쟁 역시 단순하지 않다. 만일 용공문제가 특정당이나 당대표와 연결되어 있다면, 어찌 이것이 정략적인 차원의 문제란 말인가. 국민회의의 색깔문제가 그렇게도 심각한 사실이었다면 이 중대사안을 공안당국이 어찌 지금까지 방치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당사자가 법적 처리를 받지 않고도 여러번 대통령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니 정부는 직무태만을 해왔단 말인가. 또 오익제사건만해도 누구나 맘 먹으면 월북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대공 울타리가 그렇게도 허술하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차제에 국민회의도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고 시비내용이 재론되지 않도록 명쾌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경선에 임했던 신한국당 주자들의 모습도 석연치가 않다. 민주정신은 당당히 싸우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다.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되겠다는 이들부터 서민의 어려움은 아랑곳 않고 자신들의 당리당략 내지는 개인 이기주의에만 집착하면서 온통 국가를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나라살림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반복되는 부실건축, 방치되다시피한 심각한 환경오염, 연속되는 지상·해상·항공사고, 지도층의 무분별한 해외도박, 무절제한 해외여행, 성폭력을 위시한 사회윤리 파괴문제 등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출동」 「현장추적」 「PD수첩」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관련 당국의 속 시원한 후속조치나 개선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참담하기만 하다. 관련 책임자들은 위에서부터 한결같이 「내탓은 아니오.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하는 이들 인재의 원인이 어디 있겠는가. 뿌리깊은 우리의 대충대충 문화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적당주의 및 관련자의 책임회피풍조, 부실관리로 대표되는 확인·점검문화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거기에다가 사고가 터질때마다 형식적으로 일하는 행정당국의 고질적인 순간넘기기식 소극적 대응조처가 일조를 한다.
이같은 행정당국의 소극성은 문민정부동안 무려 140여명이 장관직을 거쳐간 단명 장관풍토와 가신그룹 챙기기 식의 비전문성 인사로 나타났으며 결국 망사의 미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인사풍토에서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전문성이 어떻게 축적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보면 우리는 작금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기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속속들이 파고든 전문성파괴의 후유증을 각종 사고를 통해 하나씩 입증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현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앞으로 전개될 새정부에서는 땜질식 행정조치나 가신그룹 빚갚기식의 인사발령 풍조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철저히 파괴된 전문성의 회복이다. 더이상 서구 기자들이 한국을 「3C의 나라(Republic of Total Corruption Crisis Comedy)」라고 비꼬지 못하도록 우리 스스로 적극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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