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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는 길목은 넓지만/김광웅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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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는 길목은 넓지만/김광웅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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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면서 제법 가을 빛이 완연하다. 서울 근교에 피기 시작한 코스모스도 가을을 알린다. 무더위만큼이나 풍요로웠던 여름이 어제일만 같다. 여당은 그 어려운 경선을 치르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고, 오히려 지금까지 경선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이유야 분명하지만 정치가 그래서야 되겠는가. 이제 정치도 풍성한 수확을 거둘 계절이 되지 않았는가.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무리 큰 권력이고, 또 한번 놓치면 적어도 5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만 대권으로 가는 길부터 이제 질서를 잡아야 할 때가 됐다. 아무리 무질서를 속성으로 하는 게 정치라고 해도 더 이상 방치하면 경제고 사회도덕이고 다 망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카오스에도 질서는 있는 법이다. 초기의 조건만 통제하면 얼마든지 질서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 혼돈이론인데 이 나라 정치는 카오스만도 못하다. 이렇게 중증에 빠진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정치적 무질서의 근인부터 찾아나서 보기로 한다.

자랑스레 끝낸 여당의 경선은 뽑힌 당사자의 흠결로 뒤뚱거리고 있다. 공인은, 그것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인은 적어도 5단계에 걸친 평가에서 합격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게임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즉 성장기, 경선기, 국정구성기, 국정운영기, 그리고 퇴임후 활동기에서 여당 대통령후보로 뽑힌 이회창씨에게 원초적인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다.

잘못이 있다면, 과거에 대한 면밀한 평가없이 세싸움으로 후보자를 선택한 점이다. 이런 점은 현직인 김영삼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를 테면 지난 과거는 젖혀 놓더라도 퇴임 후에 무슨 활동을 할 것인가가 현재 전혀 예측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평가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아직도 주역인 양 선택의 결과를 무시하고 정권재창출 어쩌고 하며 떠들어 대는 것은 지극히 반민주적이다. 민주주의란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이다. 이것부터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대권을 논하는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이야기를 줄이면 현재의 상황은 여당사정만이 아니라 경선 이후에 등장한 인물들로 해서 더욱 어지럽혀지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등장은 자유의사에 기초한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 또한 넓게 열려 있다.

문제는 정당의 배경을 업고 정치인으로 당선되었으되 행정에 전념하기 위해 정치를 떠났던 조순 시장이 대권을 향해 다시 정치에 등장하는 과정에서 자치가 철저하게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직 탈당하지 않은 이인제 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경선에 승복하지 않는 비민주성에다가 자치까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장관이 청와대행을 결심하는데에는 현실적으로 바로 이런 문제가 있다. 미국과 달리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이 그 자리를 승계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다른 당 출신이라도 주지사나 시장의 유고시 선출직 부지사나 부시장이 승계한다. 지금 미국의 야당인 공화당은 「GOP(Grand Old Party) 2000」이라고 해서 선거열기가 달아 오르고 있다. 지난 경선에 나왔던 포보스, 그리고 알렉산더와 더불어 현재 텍사스 주지사인 부시가 중서부 대회에서 연설로 경선을 시작했다. 주지사건 도지사건 시장이건 누구도 백악관이나 청와대로 향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클린턴의 경우처럼 아칸소와 같은 작은 주의 지사는 대선기간동안 자리를 유지한다. 그러나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등 큰 주의 지사는 출마선언과 동시에 자리를 부지사에게 이양한다. 임명직이 승계하는 우리의 경우는 자치가 다시 중앙에 예속된다는데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선에 출마하려는 지방장관은 행정공백만이 아닌 자치상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 나라 정치의 무질서는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지방장관의 대선 출마를 예견했다면 그 자리를 행정직이 승계하도록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경선이 그렇게 문제였다면 후계자를 미리 선택하거나 부통령제도라도 만들었어야 했다. 고쳐야 할 규정과 제도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지도자 개인의 행태만 탓하지 말고 제도로 보완해 질서를 잡아가는 정치의 계절을 맞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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