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수도치고는 도로사정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도로로 차를 몰고 다니려면 바퀴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정도다.그러나 최근들어 이런 사정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워싱턴 진입로부터 깨끗한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했다. 속도위반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시원하게 차를 몰 수가 있다. 워싱턴의 재정 및 운영을 인수한 연방정부 직속의 통제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워싱턴 수술에 나선 뒤 나타나고있는 현상이다.
그 통제위원회가 최근 벽에 부딪혔다. 워싱턴 시내 40여개 공립학교의 문을 개학시점인 9월1일이 지나도 열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통제위원회 산하 공립학교이사회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워싱턴 각급학교의 지붕개량 작업을 실시했다. 학교지붕은 그동안 소방규정 위반문제로 오랜 시비거리가 되어왔다. 93년에는 한 학부모단체가 학교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말썽많은 지붕을 고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청지연 등의 이유로 방학내에 개량작업을 끝내지 못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학부모단체의 소송을 다루던 법원은 지난달 『안전문제상 학생들이 있는 동안에는 지붕수리를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사회는 개학을 3주 연기했다.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로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지붕을 고치는 것도 학생의 안전때문이고 그 작업을 위해 학교문을 열 수 없다는 것도 학생의 안전이 그 이유다. 하지만 학교는 닫혀있다. 기묘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사회의 이해하기 힘든 구석을 느낀다.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듯한 일이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국사회에서는 종종 나타난다. 백악관을 둘러싼 도로가 관할당국의 차이때문에 엉망으로 관리됐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목적이 수단앞에 왜소해지는 현상이 미국사회가 극복해야할 과제인지도 모른다.<워싱턴>워싱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