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조기정리 해법없어 ‘미봉책’ 비판도정부가 25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인한 금융위기가 위험수위에 근접했다는 여론을 뒤늦게 나마 받아들여 사태수습에 적극 나선 것을 의미한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으로 심려를 끼쳐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강부총리가 그간 『금융상황이 과장되게 거론되고 있다』며 시장의 자율적인 해결을 강조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안이한 태도로 금융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비판을 인정한 셈이다.
발표된 대책도 금융기관 위기시 정부가 보증을 서겠다고 선언한 것을 비롯, 제일은행과 종합금융사에 대한 한국은행의 특별융자, 외국인주식투자한도 확대 등 정부로서는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하다시피 했다. 교과서적인 「시장경제원리」를 내세우며 방관해오던 정부가 뒤늦게나마 적극수습에 나섰다는 점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은행지원과 관련, 특혜시비를 감안해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은특융을 지원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대상도 「부실규모가 크고 대외신인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으로 정했다. 물론 우선 지원대상은 제일은행이다. 금리는 과거(연리 3%)보다 높은 연리 8.5% 수준을 적용하는 한편 지원규모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했으나 2조원가량이 될 전망이다. 특히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채를 발행, 현물출자하기로 했다.
종금사에 대해서는 기아 대농 등 부도유예기업에 대한 여신액을 기준으로 선별, 한은특융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7월말 현재 21개사가 대상이다.
정부는 한은차입(2조원)과 재정지원(5,000억원) 등을 통해 3조5,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를 돕고, 토지공사로 하여금 기업들의 부채상환을 위한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함께 외국인주식투자한도를 현행 종목당 23%에서 26%로 확대하고 연지금 수입기간을 120일에서 30일 더 늘리며 수출선수금 영수한도도 폐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80억∼85억달러의 외국자본이 더 유입되는 만큼 외환수급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게 재경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대책에는 금융권의 최대 현안인 부실기업의 조기정리에 대한 해법은 거의 제시되지 않아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은행 종금사들의 자금(유동성) 부족보다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 등에 따른 금융기관의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정부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실채권의 정리를 위해 재정까지 지원, 11월께부터 운영되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보 기아사태의 해결없이 위기타개는 역부족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박영철 금융연구원장은 『최근 금융의 문제는 실물부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고,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도 『금융시장의 불안은 기업의 연쇄부도, 즉 실물시장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만큼 출발점인 기아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서지 못하더라도 기아 등의 해법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는 주문이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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