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기피 다반사 연 1,100억 “업주 주머니”로/환불 요구했다가 타박맞기 일쑤/유통·제조사는 서로 “네탓” 전가/정부 팔짱 소비자만 피해얼마전 손님을 치른 뒤 빈 맥주병 20개를 모아 병당 50원씩, 공병보증금 1천원을 돌려받기 위해 슈퍼마켓을 찾았던 주부 김모(42·서울 중랑구 상봉동)씨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슈퍼마켓 주인이 『보관장소도 마땅치 않은데다 도매상에게 넘겨줘야 병당 5원 받는 수수료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회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원 재활용과 환경보호를 위해 정부가 8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주류·청량음료 「공병보증금제도」가 정부의 무관심과 주류, 음료수제조업체들의 회수의무 불이행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미리 부담한 공병보증금은 주류만해도 연 1천1백억원 대부분이 제조업자나 도·소매상들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
공병보증금제도란 제조업체가 공병보증금을 포함시켜 제품값을 정한 뒤 소비자가 소매점을 통해 빈병을 반환하면 그 금액만큼 환불해주는 제도로 공병보증금은 소주병과 청량음료병이 40원, 맥주병이 50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소매점들이 빈병회수를 기피하고 있고 간혹 환불해주는 경우도 소주병은 20원, 맥주병은 30원씩 보증금보다 20원씩 낮게 쳐 주고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아예 공병을 재활용수거함에 버리거나 함부로 다뤄 공병보증금제의 취지도 공중에 떠 버렸다.
현재 공병회수 체계는 ▲소매점―도매상―제조업체 ▲공병수집상―제조업체로 이어지는 2가지. 소매점에서 도매상들은 맥주병은 55원, 소주병은 43원에 수거, 제조업체에 각각 63원, 48원에 넘긴다. 맥주병은 8원, 소주병은 5원의 수수료를 받지만 수거·분리·반납 과정의 비용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매상들 역시 도매상이 회수하지 않는 빈병을 마냥 쌓아둘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또 「제조업체가 직접 빈병을 회수·운반해야 한다」고 국세청 고시에 규정돼 있지만 제조업체에 잘못 보였다가 언제 제품 공급에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제조업체들도 현행 회수체계로는 공병수거 수수료가 더 들어 제대로 이행하려면 제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제조업체와 유통업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정부의 시책에 협조하는 소비자들만 명분도 없이 헛돈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업계가 밝힌 지난해 국내 주류판매량인 58억병(맥주 33억4천만병, 소주 24억6천만병)을 기준으로 할 때 소비자들이 일방적으로 날린 돈은 1천1백억원에 달한다.
주부 박모(27)씨는 『맥주병에 엄연히 「50원 환불」이라는 문구가 있는데도 소매상에 공병을 가져가면 제값을 환불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정부의 무관심과 제조업체와 유통업자의 일방적 약속위반으로 소비자들만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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