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대학동창들과의 만남에서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내 남편 내 아들 등 「내 남자」하고만 부딪히고 사는 전업주부 친구들은 「내 남자」에게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내 남자」와 하루종일 부대끼면서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보기엔 측은하기 짝이 없는 면모에 대해서도 정작 아내인 친구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밖에 모른다, 회사에서 매일 늦게 온다, 가족 생각은 하나도 안해준다 등등 흠잡기는 끝이 없었다.
그렇다. 남자들은 매일 가정으로 늦게 돌아간다. 내가 일하는 재정경제원만 해도 거의 10시쯤이 정시 퇴근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흐름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장에 목매달고 다니는 이유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도 있겠지만 실은 가족을 위해서이다. 가끔 동료로서 남성들은 『가족들에게 시간을 내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다』 『남들처럼 버젓하게 자녀들한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정말 일도 가족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감정을 토로한다. 맘대로 못하는 것은 강한 남편, 강한 아버지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고 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채택되지 않아서 좌절하거나 동기생들과의 경쟁에서 밀릴까봐 초조해하고 조직이 원하는 것을 맞추기 위해 자기의 즐거움은 기꺼이 희생하는 남자들을 볼때마다 나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차이보다 일하는 자로서 동질감을 더 느낀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남자의 모습은 동료로서 아름답고 기회를 따내려고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도 웃으면서 봐줄 수 있게 된다.
물론 남자들 중에는 지사선거를 위해 KAL 사건이라는 비극조차 홍보전으로 활용하는 구티에레스 괌 지사나 아직 시신이 남아있는 KAL기 잔해 앞에서 사이좋게 포즈를 취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국회의원들처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철없는 남자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경쟁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가능한한 내 남자들이 분수에 맞는 야심을 갖도록 내남자들의 어깨에 놓여진 지나친 책임감의 무게도 덜어주고 함께 짊어지기도 하면서 나가는 여자들을 보고싶다. 경쟁에서 밀려난 남자들이 가장 이해받지도 위로 받지도 못하는 것이 가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남자들의 인생행로가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신언주씨는 62년 대전에서 태어나 안양시 평촌신도시의 아파트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84년 7급 공무원으로 경제기획원에 첫발을 디뎠으며 현재 재정경제원내 여성으로는 최고위직인 사무관 4명 중 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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