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발전할수록 육체·정신 철저통제/인간 자생능력 약화/자기정신 불신까지지난 20년동안 현대의학의 기본 가정이었던 생물의학적 모형(Biomedical Model)은 삶의 과정에 관한 설명을 배제하고 환자를 질병이 발생하는 수동적 객체로만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대안으로 사회환경적 모형이 최근 의료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 모형에서는 환자를 의료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전인적 인간으로 보며 따라서 의료를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방식까지 고려하는 인간화한 의료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볼 때 의료통제의 영역이 확장된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함정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전인적 의료의 접근이라는 명목으로 삶의 여러 분야에 더 합법적으로 침투, 질병과 연관된 사회적 문제를 탈정치화하고 병의 초점을 물리적 영역으로 축소시켜 버려 환자 스스로 병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억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는 것을 특정 병인을 가진 질환체로 보고 몸을 조절가능한 기계적 구조로 인식하는 생물의학에 내재된 기본가정은 「의학이야말로 경험적인 관찰과 논리적 추리가 가능한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합리적 과학에 근거한 진리를 찾는다는 근대적 관념과 맞물려 사회구조의 변화로 생긴 공백부분을 파고 들어왔다. 서구의료의 제도적 변화면에서는 1800년대까지의 침상의료에서 그 후 병원의료로,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실험실 의료로 발전해 오면서 의과학자들에 의한 의학지식의 막강한 통제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학이 사회통제기구의 하나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렇게 의학이 독자적으로 특정기술을 창조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사가 전문가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일상의 여러 분야를 전문가에게 의존하여야만 하게 된 의료화 과정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의료화는 과거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문제들, 예를 들어 임신과 출산, 폐경과 노화, 어린이의 학습부진이나 과잉행동에까지 의학전문기술을 적용시키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삶에 관한 해석까지 의료기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응할 능력을 점차 잃어가게 된다. 무엇이 아픈 것인가를 권위있게 말할 수 있으므로 의학은 개인의 아픈 행위를 규정해 줄 뿐만 아니라 질병의 가능성 그 자체를 창조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신의 정신건강을 검증받으러 오는 경우이다. 철저히 개인의 것이라고 여겨지던 정신까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이러한 위기의식은 과거에는 없었던 것으로 건강상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신문이나 TV매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건강염려증」적 분위기 탓이기도 하다.
의학적 설명이 다양한 상황에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의학의 대중적 인기는 보장될 것이다. 소아정신과의 경우,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의 행동의 원인으로 부모의 승화시키지 못한 무의식이나 그릇된 육아법에 유죄선고를 내리기보다는 현대과학의 산물인 첨단의료기제와 통계기법을 동원하여 치료가능한 뇌의 이상 혹은 질병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 그리고 그것은 부모-아이 관계를 재정의 해주는 동시에 의학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학은 임상적 기능에 더하여 사회가치관을 유포하고 도덕적 기능까지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가 질병의 가치중립적인 의학적 측면과 이 의학적 측면과 맞물려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가치관을 구별하여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현 의료사회는 보험제도에 의한 의료시술의 제한과 신경영주의의 등장 등으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의사의 양적 증가가 의료계내에 또 하나의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으나 의료인력 수급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특징이 있다. 위기에 처한 의료계가 수요를 창출하기 위하여 대중적 가치관에 편승하여 무분별한 의료상업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보아야 할 때이다. 특히 최근 「건강한 사회」의 기치하에 퍼져가고 있는 건강염려증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일상의 생활사까지 의사에게 상담해야 하는 환자들을 볼 때 그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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